소설가 한말숙(72)씨 가상 유언장 화제

입력 2003-09-22 14:29:29

"수의는 엄마가 준비해 둔 것을 입혀라..화장해서 재를 엄마가 아끼는 정원의 주목 밑에 뿌려라..너희 아빠의 재혼은 안된다"(소설가 한말숙씨)

문단원로인 한말숙(72)씨가 격월간 「한국문인」(10.11월호)에 매우 눈길이 가는 '가상 유언장'을 실었다. 슬하 네명의 자식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 한씨는 8개항에 걸쳐 구체적 '당부성' 유언을 남겼다.

"수의는 엄마가 준비해 둔 것을 입혀라"라고 운을 뗀 한씨는 "장례식은 병원 영안실, 가족장은 검소하게, 아빠의 음악을 아주 작게 들리게해라. 찬송가, 독경 다 필요 없고 영정 앞에는 헌화한 꽃만 놓아라"고 요청했다.

한씨의 남편은 가야금 작곡가 황병기씨로, 금슬 좋기로 소문나 있다.

또 한씨는 "아빠도 너희들도 검정 양복에 하얀 종이꽃 리본만 가슴에 달아라"면서 "엄마의 친구 선후배들이 오실지 모르나 부의금은 절대 사절해라. 내빈의 싸인장만 준비해 두어라. 장례식이 끝난 후 그 분들께 감사장을 보내라"며 장례가 자칫 '민폐'가 되지않도록 배려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화장해서 재를 엄마가 아끼는 정원의 주목 밑에 뿌려라. 이것이 불법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소로 올라가서 중허리 쯤에 뿌려라. 그 역시 불법이면 돌 상자에 분골을 담아서 묻고, 묘비는 내가 그려서 보여준 대로 얕으막하게 네모 모양으로 단단한 돌로 만들어라. 비싼 대리석 같은 것은 쓰지 마라"고 했다.

묘비명은 "평생 감사하며 살다가, 한점 미련없이 생을 마치다.."로 새겨줄 것을 주문했다.

한씨는 기일에 재래식 제사를 지내지 말고, 대신 편한 곳에서 자신의 사진을 내놓고 회상하거나 함께 모여 식사를 할 것, 성묘는 1년에 한차례 하고 차례는 지내지말 것, 성묘 때 음식은 가져가지 말 것 등도 조목조목 부탁했다.

그리고 "너희 아빠의 재혼은 안된다. 아빠는 손이 안가는 분이시니까 너희들 중 여건이 맞는 애가 아빠 가까이에서 살면 된다. 나의 유산과 유품은 평소 말했던 대로 해라"고 말을 맺었다.

한씨는 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해 1957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현대문학상,한국일보 창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어떤죽음' '노파와 고양이' '장마' 등이 대표작으로, 전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중 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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