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한 수 읊고 가자.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주렴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아는 이 있을까 저허 하노니/꽃 지는 아침은 울고싶어라' 읊고 보니 참 괜찮다.
맛이 있다.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감방에 가면서 '커닝'한 덕분에 새로 유명해진 시다.
뭔가 멋있는 '피날레'가 없을까 궁리끝에 동탁 조지훈 선생의 시(낙화) 한 수를 빌린 것이다.
기실 이 시는 조 시인이 일제말기 강원도에 숨어지낼 때 외로움과 망국한(恨)을 지는 꽃의 아름다움으로 그려낸 것인데 무엄하게도 박 피고인이 '자기변호'에 도용한 것이다.
좌우간 인텔리들 폼잡는 데는 시 한수가 제격인가 보다.
요즘엔 옷벗는 검사들마다 그냥 가지않고 꼭 한 수씩 읊고 간다.
DJ의 충신들은 이렇게 돈때문에 망해갔다.
권노갑도 돈때문에, 정치자금이란 검은 돈때문에 정치생명이 끊어졌다.
십수년전 민정당이 집권당이던 시절의 얘기 한토막. 경북도내 모처에 학자출신이 공천을 받아 출마채비를 했다.
그런데 정작 지역구에 와서보니 여당조직이란 것이 꿈적도 않는 것이었다
정치초년병이었던 이 후보가 경북도당 간부에게 하소연을 했다.
"도대체 왜 이러냐"고. 그는 돈을 풀라는 충고에 따라 돈을 풀었다.
그래도 조용했다.
또 물었다.
답은 또 '돈을 풀라'였다.
풀었다.
조용했다.
당간부는 한번 더 풀어보라고 권했다.
세번을 내리 풀자 조직은 그때서야 꿈틀했다.
정치조직, 특히 여당의 정치조직이란 것의 생리가 돈맛이 어느 정도 배어들어야 움직이게 길들여졌던 것이다.
유권자들의 손에 3이 쥐어지기까지 최소한 10을 써야하는 풍토, '고비용 저효율'의 이 선거풍토가 지금까지의 국회의원 선거양상이었다.
이 덕분에 그는 당선됐다.
최근 한 신문의 정치인 참회록을 보면서 적어도 정치자금에 관한한 강산이 곱배기로 바뀌어도 변한게 없구나 하는 탄식에 젖는다.
박범진 전 민주당의원의 16대 총선 고백은 '기업서 놓고간 가방에 현찰 1억, 총선비용 기억나는 것만 9억원대, 당.기업서 받은 돈 회계처리 못했고, 장부기재 된 것은 30% 미만, 돈에 관한 한 여도 야도 할 말 없다'는 것이었다.
낡아빠진 정치자금 문제, 노 대통령 스스로도 이런 문제에서 '나는 자유롭다'고 말하진 않겠다고 표현했던 그 정치자금 문제를 거듭 주제 삼는 것은 이것이 이땅의 모든 부패, 노무현 대통령이 개혁하려고 하는 바 모든 잘못된 것의 남상(濫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선거법.정치자금법의 개정이 실기(失機)한다면 개혁은 물건너가고, 정치인들은 계속 '교도소 담장위를 걷게 될' 것이다.
돌아본 6개월- 노 대통령의 개혁사단은 개혁의 조급증,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바꾸려고 욕심만 앞세우지 않았나 싶다.
집권 5년은 긴 시간이 아닌데, 초석만 잘 다져서 다음정권에 넘겨주면 될 일을 준공식까지 보겠다는 의욕에 넘쳤다.
무엇보다 '소수정권'의 앞날은 엄청난 장애물 경기요, 국내외적으로 숱한 돌발사태들이 진로를 방해하리란 예측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노 정권 '6개월의 성적표'는 미 또는 양, 사회여론은 '불안의 확산'이었던 것이다.
예기치 못한 화물대란, 측근들의 '의혹'이 빚어낸 언론갈등, 특검거부로 인한 대야(對野) 충돌, 청문회 스타의 '못말릴' 말솜씨가 자초한 국민적 불안감, 껄끄러운 한.미관계 같은 것들이 새정권이 빚은 불의의 장애물이었고 여기다 결정적 실패작 '2% 경제'가 노무현 성적표를 버려놓은 요인들이다.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애써 자위하기엔 좀 낯간지럽다.
지금 노 대통령의 집권민주당은 분당의 위기에 직면해있고, 미국의 급작스런 이라크 파병 요청으로 국론이 분열될 상황앞에 놓여있다.
오죽하면 재벌들까지 정치리더십을 조롱하고 있을까?
다시 정치자금 문제로 돌아가보자. 기실 이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개혁은 성공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 개혁의 칼자루는 국회 제1당인 한나라당이 쥐고있다.
따라서 정치개혁을 이루자면 다른 건수로 자꾸 야당과 다툴 계제가 아닌 것이다.
노 대통령이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고 한나라당을 목죌 수 있는 유일한 '꺼리'가 바로 이 선거법.정치자금법의 개혁인데, 여태껏 엉뚱한데서 힘을 다 뺐으니 딱하다는 것이다.
이 개혁 저 개혁 다 치우고 정치자금의 투명화-이것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해보라. 그러면 모든 개혁 다 이루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안(試案)은 이미 책상위에 올라있다.
강건태〈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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