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청춘과 인생을 빼앗기고 짓밟힌 지 60년이 지났지만 회복되거나 달라진 건 없습니다.
일본 정부요? 우리 정부의 무관심이 더 견디기 힘듭니다".
이용수(74.대구시 달서구 상인동)할머니는 아직까지 밤잠을 설친다.
정신대로 끌려가 받았던 고문 등의 육체적, 정신적 후유증에다 정신대 할머니들이 한두 명씩 세상을 떠나면서 이제 피해 증언자마저 모두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조급함과 답답함 때문이다.
15세에 일본군에게 끌려가 '종군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던 이 할머니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때까지 성폭력은 물론 기억하기조차 싫은 온갖 구타와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손발을 잔인하게 맞는 건 하루 일과일 정도였습니다.
손발이 붓다 못해 움직일 수조차 없었지요. 지금 생각하니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이마 양쪽에 전선을 연결해 가했던 전기고문도 흔했지요. 불로 지지고 칼로 난도질하고…. 그 때 기억은 떠올리기조차 싫습니다".
고문 후유증으로 요즘도 뜬눈으로 밤을 보낼 때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우리 정부의 무관심. "지금까지 누구 하나 일본 정부에 당당하게, 딱 부러지게 말한 대통령이 있습니까. 모든 걸 짓밟히고 결혼도 못하고 혼자서 외로이 살아온 게 다 누구때문인데…. 그런데도 국가유공자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이 할머니는 우리네 딸들이 당해야 했던 피해와 아픔, 답답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지금도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전국을 다니며 과거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젠 기력마저 쇠해 12년째 일본 대사관앞에서 벌여온 수요집회조차 참석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며 안타까워한다.
"이러면 뭐 합니까. 친일파를 기리는 가요제를 여는 지방자치단체도 있는 판에…. 우리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된건데 아직도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게 너무 답답합니다".
늦은 나이에도 불구, 지난 96년 경북대에 명예학생으로 입학, 국제법과 일본어 등을 공부하기도 했다.
정부도 나서지 않는 현실이 답답해 일본을 국제법정에 세우는 등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이 할머니는 증언이 필요한 곳이면 세계 어디든 자비를 들여서라도 달려갈 것이라 한다.
지난 8월엔 광복절을 즈음하여 일본을 방문, 많은 일본인들에게 자신이 겪어야 했던 경험을 들려주고 일본 정부의 사과를 촉구했다.
17일엔 '일본의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아시아 지역 토론회' 참석차 중국 상하이(上海)로 떠났다.
얼마 전엔 현대공원에 묘지를 샀다.
언제 하늘나라로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죽으면 대구시나 자매도시인 일본 히로시마(廣島)에서 무덤만이라도 관리해줬으면 해요.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징적인 곳으로 남겨 둬야죠". 자식이 없는 할머니의 유언이다.
"내가 죄가 있다면 이 땅의 딸로 태어난 것밖에 없습니다.
죽어도 절대 죽지 않을 겁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역사와 함께 살 겁니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사진: 이상철기자 find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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