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日 대중문화 완전 개방

입력 2003-09-16 15:00:00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참으로 소란스런 사안이다.

1998년 10월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공동 선언하면서 내놓은 이 카드는 그 뒤 많은 논란을 불렀다.

민족 감정을 떠올리는가 하면, 먼저 국내 문화산업 보호를 위해 명료한 로드맵을 내놓아야 한다는 소리도 높았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글로벌 시대를 내세우거나 이미 지하시장을 통해 익숙해져 막을 길이 없다는 여론도 없지 않았다.

속도와 수위를 조절하자는 차분한 제안들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교과서 왜곡,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 문제 등으로 한동안 추가 개방이 물밑으로 숨어들었다.

◈한동안 잠수했던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건 얼마 전부터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대폭 개방을 고려한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당시 문화계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3차에 걸친 개방에도 국내 문화시장을 크게 잠식하지 않았다는 일말의 자신감과 '한류' 등으로 이뤄진 국내 대중문화의 해외 진출이 큰 성과와 연결됐기 때문이었으리라.

◈문화관광부는 어제 영화.게임.방송.애니메이션.가요 등의 완전 개방을 골자로 한 일본 대중문화 4차 개방 조치를 확정하고, 관련 부처와 협의를 거쳐 이번 주에 발표키로 했다.

우선 영화.게임.음반 등은 바로 개방하고, 방송.애니메이션은 연말까지 세부 사항을 보완한 뒤 내년 1월부터 개방할 움직임이다.

최초 개방 이후 2000년 3차 때 남겨둔 채 걸었던 마지막 빗장까지 풀게 되는 셈이다.

◈그간 개방이 안 된 분야는 18세 이상 상영가 등급의 극장용 영화, 일본어로 된 가요 음반, 애니메이션, 방송용 오락과 드라마 등이었다.

당초 지난해 '월드컵' 이전 완전 개방 계획이 한.일 관계의 악화로 미뤄지다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 정서와 우리 산업에 끼칠 영향을 우려하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

특히 방송은 사전심의가 불가능해 바로 안방으로 직행하게 되고, 애니메이션 분야의 공략 등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문화는 정서적 공감대를 쉽게 넓힐 수 있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 문화도 높아진 경쟁력 덕분에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위험한 발상이다.

정부는 그간의 개방에 따른 수지타산의 객관적 자료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는 형편이기도 하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미칠 영향과 문화.산업적 측면에서도 국내 문화상품이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은 아직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양질과 저질의 선택은 이제 우리의 몫이기도 하지만, 주도면밀한 전략과 대비책이 전면 재검토돼야만 하리라.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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