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도 법적 배상 될까

입력 2003-09-16 11:39:38

제14호 태풍 '매미'가 엄청난 인명과 재산피해를 야기함에 따라 수재민들이 정부 보상금 외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법적인 배상을 받아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태풍 피해는 예방책임 등을 묻기 어려운 천재지변적 성격이 강하다.

때문에 법적인 배상을 받기가 쉽지 않아 배상 소송을 제기한 피해민들이 번번이 패소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 피해 유형별로 국가 등의 관리상 잘못이 입증될 경우 배상책임을 인정한 판례가 일부 나온 바도 있어 태풍 '매미' 수재민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 제방 붕괴로 주변 농경지가 침수된 사례와 비슷한 경우로는 지난 2001년 성남시 동막천 둑이 무너져 피해를 본 사람들이 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서울고법은 "시가 제대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며 배상책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또 경남 마산시 해운동의 해운프라자 건물 지하 침수로 10여명이 수몰된 사고의 경우는 작년 10월 서울지법이 건물 침수로 지하층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숨진 김모씨 유족이 건물주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비상탈출구를 마련하지 않은 건물주의 책임을 물어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도로상의 낙석 피해를 봤을 때 법원이 국가나 지자체의 책임을 묻는 판례는 이미 적잖이 나온 상태이고, 산사태도 위험사실을 알았음에도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등 적절한 예방책을 강구하지 못했다는 점이 입증된다면 배상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 등 공사장 인근 주민의 피해에 대해서도 법원이 건설사에 책임을 물린 판례들도 있어 수해대책을 게을리 했거나 공사과정의 하자가 드러날 경우 건설사들 역시 배상책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피해 유형별로 개별적 손해배상 청구가 아니라 지역민이 집단으로 제기한 소송에서 국가 등에 재해 피해의 원천적 책임을 물어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수해와 관련된 대표적인 법정공방은 지난 88년 수도권 집중호우로 침수피해를 입은 서울 마포구 망원동 주민 1만여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당시 주민들은 10만원에서 최대 100여만원의 위자료 배상판결을 받았지만 이는 재해 자체에 대한 배상이 아니라 인근 유수펌프장 관리상의 하자가 입증된 데 따른 정신적 위자료 성격이 강했다.

더욱이 이번 태풍은 지난 59년 태풍 '사라' 이후 가장 강력했던 것으로 분류되는 데다 기상관측 이래 최대풍속을 기록할 만큼 재해적 성격도 강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천재지변과 관리상 잘못 사이에서 관리자의 배상책임을 입증하는 일은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천재지변적 수해와 관련한 판례로는 신림동을 휩쓴 살인적 폭우로 피해를 본 수재민 30여명이 서울시와 구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서울지법은 작년 12월 "예측 강우량을 훨씬 넘는 수량이 단시간 복개시설을 통과하면서 발생한 불가항력적인 것인 만큼 손배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지난 83년 태풍 셀마가 전국을 강타할 당시 일산 방조제둑이 무너져 농지침수 피해를 당한 고양시 주민 6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은 국가가 계획홍수위 또는 통상의 홍수량을 초과한 호우피해까지 배상할 책임은 없다고 판결했다.

이처럼 수해와 관련, 집단으로 제기된 소송에서 패소판결이 잦은 이유는 국가배상법 제5조에 명시돼 있듯 도로, 하천, 기타 영조물의 설치.관리에 하자 또는 공무원의 명백한 과실이 있을 경우에만 배상이 인정되는 엄격한 규정과 판례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피해액을 입증하고 관리책임을 맡은 당국의 과실이 명백한 인과관계를 가질 때에만 배상을 받아낼 수 있다"며 "인근지역의 축대나 다리, 방조제 등이 취약한데도 보강공사를 소홀히 했다는 등 과실 입증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종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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