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루동안 달구벌을 달구었던 U대회의 성화가 마침내 꺼졌다.
흐느끼는 듯 애절한 대금 가락, 그리고 '굿바이 대구, CU(See You) 이즈미르'라는 전광판의 글자는 "아, 정말 끝났구나"하는 서운함과 함께 그라운드의 선수들, 스타디움을 꽉 메운 사람들의 가슴을 석별의 정으로 물들였다.
특히, 까탈스런 트집과 이해할 수 없는 해프닝으로 밉다가 곱다가 우리마저 요동치게 했던 북한선수단과의 헤어짐은 또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남과 북 청춘남녀의 애잔한 이별은 남북간의 높은 장벽을 상징하는 것 같아 비애감을 느끼게 한다.
지난해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해외청년학생통일대회에서 처음 만나 풋풋한 연정을 키워온 김혁민·조선화씨. 조씨가 북한응원단원으로 왔다는 사실을 알고 서울서 대구로 달려온 김씨는 피켓을 들고 응원단 주변을 서성이며 애타게 조씨를 찾았지만 겹겹이 둘러싼 인의 장막으로 인해 간신히 편지만 전할 수 있었다.
그 역시도 간접적으로 조씨의 쪽지만 건네받을 수 있었다.
그 쪽지엔 '다시 꼭 만납시다.
통일의 그날까지 안녕히!'라는 추신이 들어있었다.
모두들 U대회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8월도 떠나갔다.
'나 이제 가노라'며 한바탕 마지막 폭염을 퍼부었을만도한데 U대회에만 쏠려있는 우리가 못내 서운했던지 살그머니 가버렸다.
여름이 떠난 자리에 어느새 가을이 와있다.
귀청을 울리던 매미소리도, 잠못이루게 하던 개구리 울음소리에도 힘이 빠졌다.
한창때의 윤기가 아직 남아있는 가로수의 잎들도 날마다 조금씩 메말라가겠지.
낭만을 찾는 사람들은 이제 몇 안남은 봉숭아꽃잎으로 손톱을 물들인다.
봉숭아 붉은 꽃에 이파리와 백반가루를 넣어 찧어 손톱 위에 올려놓고 비닐로 싸서 실로 챙챙 묶어 하룻밤 자고나면 다홍빛 물이 든다.
첫 눈 올때까지 손톱 위 붉은 꽃물이 초생달처럼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예쁜 속설때문인지 꽃물 들이는 젊은 여성들이 많은 것 같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세상사를 알면서도 그때가 오면 크고 작은 상실감으로 속앓이를 한다.
가버린 계절이야 내년에 또다시 찾아오지만 사람은 그렇지가 못하므로…. 하지만 헤어지면 반드시 만나게 된다는 '거자필반(去者必返)'을 떠올리면 돌고도는 세상사의 순환이치가 작은 위안이 된다.
짧은 만남 긴 이별동안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는 남남북녀의 연분홍 기다림이 하염없는 기다림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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