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벌영리 주민 하소연-"망친 농사 누가 책임집니까"

입력 2003-08-12 13:44:50

"'내년에는 괜찮겠지' 하고 참고 산 게 벌써 15년째입니다.

억울하다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영덕군 영해면 벌영리 인근 골짜기, 속칭 '땅골'에서 사과농사 6천여평을 짓고 있는 임환규(64) 최복이(61)씨 부부. 8월 햇볕에 한창 영글어야 할 사과가 벌써 낙과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미어터진다.

한 두해도 아니고 이런 광경을 15년째 지켜봐 왔다.

정상적으로 사과 수확을 한다 하더라도 겨우 입에 풀칠을 면할까 말까 한데 폐농이 이어지다보니 임씨 부부는 빚더미에 올라 있다.

"처음엔 농약을 잘못 쳐서 그런가보다 판단하고, 농약회사 관계자들을 불러 온갖 실험을 다 했었는데 결론은 '농약에는 문제없다'는 것이었지요". 답답한 임씨 부부는 목초액은 물론 마이신 등 좋다는 약은 죄다 과수원에 처방했다.

그러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되레 악화되기만 했다.

임씨는 최근에야 그 원인을 대략이나마 알아냈다.

안타깝게 여긴 마을이장이 마산환경운동연합 이상용 교수(경남대) 팀을 초청해 현지를 답사한 결과, 산등성이 너머 있는 비위생쓰레기매립장이 상당 부분 원인을 제공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 것.

다시 말해 비위생쓰레기매립장에서 쓰레기를 소각하자 다이옥신 같은 유해물질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토양을 오염시켰을 뿐만 아니라 사과나무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영해비위생쓰레기매립장은 지난 80년부터 가동되고 있다.

"밤잠 못자고 고민한 것 생각하면 참 어리석기도 했지요" 라는 임씨 부부는 그후 이같은 원인을 들어 영덕군을 상대로 손해배상 요구를 했다.

그러나 영덕군으로부터 돌아온 민원회신 내용은 '수계가 다른 만큼 침출수로 인한 농작물 피해호소는 타당성이 없다'는 것. 임씨 부부는 "쓰레기 소각과정에서 발생한 다이옥신 등에 대한 언급은 하지도 않았다"며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있다.

이런 피해는 임씨 뿐만 아니다.

땅골내 과수원 모두가 비슷한 것. 바로 인근의 구모(43)씨는 포도농사가 안돼 방치한 채 떠나갔고, 대구에서 3년전 들어온 이춘환(66)씨는 멋모르고 과수원을 구입, 농사를 짓다 두손을 들었다.

이외 박춘복(63)씨는 변변한 수확 한번 못하고 피해가 계속되자 지난해 과수원내 사과를 모두 뽑아버리고, 아예 염소를 키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들 농민들이 빚만 짊어진 것은 당연한 일. 임씨는 "남은 것은 속골탕 뿐이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요즘 사과 한상자 값이 5만원이상 나갑니다.

남들은 수확을 해 시중에 내다팔아 돈을 만지는데 농사짓는 사람이 이런 모습을 지켜만 봐야하는 심정이 어떤지를…".

임씨 과수원은 비 온 후면 사과잎의 병반이 더욱 심해진다고 한다.

실제 임씨의 사과과수원에는 제대로 된 상품은 거의 찾기가 어려웠다.

한창 푸르러야 할 사과잎은 벌써 겨울을 앞둔 나무처럼 우수수 떨어져 스산하기까지 했다.

임씨 부부는 겨우 매달려 있는 사과마저도 조금 지나면 쪼개지고 터지고, 낙과한다고 했다.

이런 되풀이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15년동안 지속됐는데 군청은 피해 정밀조사 한번 안해보고 서류 한장만 달랑 보냈으니 속이 터지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영덕·최윤채기자 cy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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