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이불을 새 것으로…무료봉사 6년째

입력 2003-07-26 08:38:08

"장마철 눅눅해진 장롱속의 이불들을 뽀송뽀송하게 새이불로 만들어 선물합니다".

칠곡군 왜관공단에 위치한 이불 솜 생산공장인 화성산업 대표 황천석(48) 사장은 매년 이맘때면 주민들이 가져오는 헌 이불을 새이불로 만들어 주는 일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솜타는 집이 없어진 요즘에는 황사장의 남다른 서비스(?)가 주민들에게는 고맙기만 하다.

끈질긴 장맛비가 오랜만에 그치고 햇살이 나자 20여명의 주민들이 얼룩이 묻은 옛이불들을 안고 공장에 찾아왔다.

공장안엔 보자기에 싸인 30여채의 이불들이 새얼굴로 태어날 차례를 기다리며 줄지어 있다

한결같이 10년은 훨씬 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무명 솜이불들이다.

황 사장은 6년째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무명솜은 무겁다며 꺼리는 경향이 많은데 그건 유통과정때 혼용솜이 천연 목화솜으로 둔갑됐기 때문이지요". "솜은 역시 우리 고유의 목화솜이 최고"라고 전문가의 견해를 귀띔한다.

물론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는 목화 솜을 거의 구경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

황 사장의 '헌이불을 무료로 새이불 만들어주기' 행사는 매년 7월1일부터 20일간 열린다.

97년 처음 시작했을때엔 "좋은 솜을 떼먹으려는 수작"이라며 이상한 눈초리로 보기도 했으나 이젠 입소문이 퍼져 칠곡지역은 물론 대구, 울릉도에서도 헌이불이 배달돼 오는 등 주민들의 발걸음이 북적댄다.

올해도 벌써 120여명의 주민들이 이불을 들고 찾아왔다.

지금까지 1천여채의 헌이불들이 새이불로 만들어졌다.

이곳에 온 헌이불들은 솜타는 재활용 작업을 거쳐 불순물을 완전히 걸러낸 후 이불솜으로 재단해서 새이불로 만들어진다.

이불보 원단은 깨끗이 세탁해오면 그대로 이용하거나 새이불로 만들고 싶으면 저렴한 가격에 자체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시집올 때 친정어머니가 손수 바느질해서 마련해준 두꺼운 목화 솜 이불들을 오랫동안 장롱속에 보관해오다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 예쁜 신혼(?)이불로 만들어 간다.

대구가 고향인 황 사장은 군 제대후 마을에 있던 솜공장이 운영이 잘 되는 것을 보고 81년 대구시 수성구 시지동에서 '사자표 이불 솜'의 상표로 솜공장 사업을 창업했다.

한때 대구·경북의 이불업계에서 '사자표 이불솜'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으나 화재와 IMF로 부도사태를 맞는 등 숱한 고생을 하기도 했다.

98년 공장안에 침구류 직판장을 개설, 인터넷 판매망을 구축하여 '홈쇼핑' 사업도 펼치며 재기에 나섰다.

수년전 구미지역 등을 중심으로 호텔과 여관 등에 대량납품의 길을 트면서 고비를 넘겼다.

이젠 12명의 사원들이 내수 판매에서만 연간 1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어려울 때 주위에서 도와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내가 부족할땐 도움을 받고 도움을 줄 수 있을때는 나누고, 베푸는 것"이 경영방침이다.

이를 바탕으로 화성산업에서는 매년 겨울철이면 홀몸노인들과 소년소녀 가장 등 불우이웃들에게 200여채의 이불을 기증해 오고 있다.

칠곡·이홍섭기자 hs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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