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벼랑위에도 길은 있다

입력 2003-07-26 08:38:08

생활고를 비관한 30대 주부가 두 아이를 14층 아파트 아래로 던지고 한 명은 안고 뛰어내린 그 날은 헌법이 제정된 제헌절이었다.

헌법의 목적은 인간의 기본적 인권의 보장과 실현이다.

헌법에서 보장된 인권, 생존권을 박탈당한 그녀는 제헌절에 끔찍한 동반자살을 하고 말았다.

평범한 가족들이 야외 나들이와 쇼핑을 하던 그 시간에 그녀는 왜 죽음의 계단을 올라야 했을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던 떨리는 손가락, 눈가에 맺힌 눈물 한 방울, 그녀는 닫기는 엘리베이터 문 밖 세상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내다보았을 것이다.

남편이 실직하고 카드 빚 3천만 원에 시달리면서 아이 병원비도 없었던 그녀는 깨진 유리 조각 위를 걷는 듯한 날들을 아이들에게 물려준다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살인을 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아이들이 질러대던 비명, "엄마 나 죽기 싫어! 살고 싶어!" 하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누가 그녀를 그리 비정한 엄마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으로 만들었을까.

그녀의 등을 벼랑 위에서 떠민 손들, 빈민들의 살인적인 민생고를 외면하는 저 정치인들의 손은 많은 사람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수천만원 대의 명품을 걸치고 다니면서도 이웃의 아픔은 안중에도 없이 탈세를 일삼는 사람들,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공무원,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신용카드 회사,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손을 내밀 때 그녀를 외면하던 사람들, 그 수많은 손들 속에 나의 손도 보인다.

벼랑 끝에 내 몰린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따뜻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 '포괄적인 사회안전망'의 구축이 이루어진 사회라면 부모들의 손에서 죽어 가는 불행한 아이들을 살려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벼랑 끝에도 길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그녀는 끝내 듣지 못했다.

"그래도 삶은 계속 되어야 한다!"고 일러주던 길의 피맺힌 목소리를.

김옥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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