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문화의 본질은 다양성이다

입력 2003-07-23 12:15:29

지난 한달 유럽을 다니며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Multi ist Kulti'라는 표어가 적힌 독일 포스터였다.

Multi나 Kulti는 독한사전에 나오지도 않는 단어여서 그 뜻을 당장은 몰랐으나, 독일인들이 상용하는 말로서 그 뜻이 '다양성이 문화'임을 알았다.

포스터에는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 얼굴이 함께 있다.

외국인 배척이 심해진 최근 독일의 고민을 보여주는 것이었으나 독일에는 외국인에 대한 법적인 차별은 없고, 사실상의 차별만이 있을 뿐이다.

여행 중 독일에서 만난 어느 중국인이 20여 년 전 한국에 있었다고 하며 반가워하면서 그 때는 한국 화교가 10만 명이 넘었으나 지금은 2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독일은 물론 서양 어느 나라에서도 최소한 법적인 인종차별은 없으나 한국은 법에서부터 인종차별이 너무나 극심하여 대부분 떠났다는 것이었다.

몇 년 전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들은 이야기를 다시 들은 것이어서 새삼스럽지는 않았으나 부끄러웠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으나 당사자들로부터 직접 듣게 되어 더욱 부끄러웠다.

과거 광부나 간호사로 독일에 왔다가 지금까지 살고 있는 우리 교포들도 그 사실을 거론하며 부끄러워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차별과 학대에 대해 분노했다.

나름대로 변명하고 최근의 입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 설명도 했으나, 그들의 분노는 쉬 삭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외국인의 인권 전반에 대한 법개정을 아직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헌법에도 인종이나 민족 또는 국적에 따른 차별은 금지되지 않고 있다.

다행히도 근로기준법에서는 국적에 따른 차별이 금지되나, 이는 원칙의 선언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잠깐 같이 여행한 가족의 갓난아기가 아파 독일 병원에 두 차례나 갔다.

여행자보험에 들지 않아 걱정을 했으나, 한국에서 의료보험에 들었다는 말만 듣고서 군말 없이 보험 처리를 해주어 무료로 치료를 받았다.

과거 일본이나 미국에서 살 때 치료 전 그곳 의료보험에 들기를 요구한 것과 달랐다.

북유럽을 다니면서 한국에서 입양되어 그곳에서 성장한 젊은이들을 많이 만났다.

기차간에서는 한국 입양아를 자녀로 둔 부모들도 많이 만났다.

몇 년 전 미국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옆자리의 어느 흑인이 나를 반기며 자신이 한국 입양아를 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끄러워한 적이 있다.

그 뒤 입양운동에 참여했으나 아직 입양을 하지 못해 더욱 부끄러웠다.

Multi ist Kulti는 인종문제만이 아니라 그야말로 문화의 본질을 말한 것임을 이번 유럽문화여행에서 절실하게 느꼈다.

KBS의 'TV,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을 찍기 위해 방문한 독일의 본과 빈에서 베토벤 음악을 비롯한 모든 문화가 그곳들의 다양한 문화교류에서 생겨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프랑스 문화와 독일 문화가 교류한 본에서 베토벤이 태어나 자란 것은 물론 유럽의 모든 문화가 교류한 빈에서 베토벤이 35년을 산 것이 그의 음악의 보편성을 만든 기본임을 알았다.

물론 본과 빈만이 아니다.

유럽의 어디에서나 그 문화의 본질이 다양성에 있음을 알았다.

그 다양성이란 여러 나라나 민족 또는 문화가 만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출신, 계층, 성, 취향 등등 인간이 갖는 모든 다양성을 말한다.

가령 대학이나 법원에서도 그런 다양성은 있다.

우리처럼 어느 한 대학 출신이 그 대학 교수의 대부분이거나 거의 균질적인 집단이 대법원을 비롯한 사법기구를 독점하는 것과 다르다.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한 대학 출신이 그 대학 교수를 독점하는 것은 열등한 동종교배라는 이유에서 금기된다.

대법원이 거의 동질적인 법관 출신만으로 구성되는 경우는 우리의 특별한 경우로서, 그것이 대법원을 비롯한 법원의 고질적인 보수화를 초래하는 기본 이유이다.

다양성이 문화라면 사고의 다양성을 막는 국가보안법 등의 입법과 획일적인 사회제도나 교육제도야말로 문화를 근본적으로 가로막는 장애이리라. 국가보안법이 철폐되어야 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사고의 다양성을 막아 '생각하는 사람'이 살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양성이 있어야 진정한 보편성이 확보된다

교류와 대화가 있어야 문화가 있다

폐쇄와 독선, 아집과 자폐로써는 문화가 있을 수 없다.

박홍규 영남대 교수 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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