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에 농축우라늄 프로그램 보유를 북한당국이 시인하면서 다시 야기된 북한의 핵문제는 연일 새로운 현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 문제는 그 심각성만큼이나 당사자들 간에 인식의 차이가 크고, 그래서 해결책 또한 막연하기 그지없다.
북한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사이에 7~22kg의 플루토늄을 추출해서 1~3개의 핵폭탄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1990년대 초부터 추정해 왔다.
클린턴 정부가 1994년에 제네바기본합의서를 채택하면서 이 북한의 과거 핵을 규명하지 못한 것은 가장 큰 실책이다.
북한은 금년 4월 23일에 베이징 3자회담장에서 8,000개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하고 있다고 밝힌데 이어, 7월 8일에는 이미 6월 30일에 재처리를 완료했다고 미국에 통보했다.
이런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 제네바 합의의 두 번째 실책이다.
최근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북한은 1983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영변 구룡강변에서 70여 차례의 고폭실험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제네바 합의 이후인 1997년부터 2002년 9월까지 평북 구성시 용덕동 실험장에서 70여 차례의 고폭실험을 함으로써 핵폭탄의 기폭장치가 완성단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고폭실험에 대해 제네바 기본합의서에서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것 또한 미국의 실책이다.
그런데 북한이 대화와 협상을 "적을 공격해서 궁지에 몰아넣는 혁명의 적극적인 지류적 공격형태"로 생각하는 한, 제네바합의의 실패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당면한 북한 핵문제의 심각성은, 북한이 수십 개의 핵폭탄을 생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했을 가능성이 높고, 기폭장치의 개발로 핵탄두의 무게를 경감시켜 미사일 장착이 가능하며, 그 운반수단인 1,300km 사정거리의 노동미사일 200기를 실전배치해 놓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자신과 주변의 대북정책 핵심 담당자들은 아직까지 '위기라는 말은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들의 표현이다', '고폭실험은 핵실험이 아니다', '추정은 어디까지나 추정이다'며 애써 위기가 아닌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너무도 안이하다.
확실히 전쟁국면에 들어가야 '위기'이고,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나서야 고폭실험이 기초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며, 북한의 핵탄두가 어디에선가 폭발해야 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한·미·일 간의 인식차이가 이렇게 크다면 김정일 정권은 그 틈새를 활용하려 들기 때문에 문제해결이 어려울 것이며, 이는 확실한 위기를 야기할 것이다.
현재 문제의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베이징 3자회담에 이은 5자회담이며, 몽골, 캄보디아 등지에 탈북자 수용소를 건설하고,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미국에 수용하여 김정일 정권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들이 있다.
김영삼 정부 때 시도했던 4자회담의 경우로 봐서, 북한은 미국으로부터의 체제보장을 내세우며 평화협정 체결을 5자회담에서도 끝까지 고집할 것이다.
문제는 이 미·북평화협정 체결이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더 이상 금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한국이 불가방침을 강하게 고수하지 않고, 북한의 핵무장이 동북아 안보에 미칠 연쇄적 파장을 생각하여 충분히 내어줄 수 있는 카드이다.
그런데 북한이 노리고 있는 것은 주한미군철수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적 단초를 마련하는 것이다.
탈북자들을 위한 난민촌 건설과 미국으로의 대규모 수용은 중국이 기본적인 협력을 하지 않는 한 대규모의 탈출로 연결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단기간에 김정일 정권에게 큰 위협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의 민·관이 북한의 인권문제와 탈북자 문제에 큰 비중을 두고 지속적으로 접근하면 북한의 민주화에 기여하고, 북한의 공격적 대외정책을 순화시킬 수 있는 장기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차 북한 핵위기' 때 협상과 합의문 작성에 만족해하지 말고 이 대안을 채택했으면 지금쯤 결실을 기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허만호(경북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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