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 '先靑後野'가 순서다

입력 2003-07-16 12:02:49

바둑에서도 그렇듯 다음 수(手)가 빤히 들여다보이는 수는 수가 아니다.

앞뒤를 다 떼고 읽으면 어제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여야가 대선자금을 같이 깨자는 제안-은 의미있다.

그러나 '타이밍'이 틀려버린 아이디어는 빛을 얻지 못한다.

당장 야당이 "웃기지마"하고 코웃음쳤다.

자기네도 구린 구석 없지 않으면서 말이다.

대통령의 제안은 순서도 틀렸고, 바둑의 수(手)로 치면 속내가 읽혀버린 하수(下手)다.

온 신문의 논조가 다 이런 식이니 노 대통령, 또 언론만 원망하게 생겼다.

이 사건의 본질은 검찰이 밝혔듯이 '피해자 3천여명, 피해액 3천500억원에 이르는 초대형 상가분양 사기사건'이요, 정대철 민주당 대표에게 얼마를 주고 다른 정치인들에게 또 얼마씩 줬다는 로비의혹은 부차적인 것이다.

사채를 포함해 무려 5천억원이란 '국민의 돈'이 증발한 것이 사태의 본질이요, 정 대표의 4억원은 이 거액의 '장부정리'에 필요할 뿐이다.

문제가 이러함에도 '피해자 3천명'은 뒷전인채 "정 대표 살려라, 아니 죽여라"하는 식으로 한사람의 정치운명에 여.야와 청와대까지 매달려있으니 주객본말(主客本末)이 뒤집혀도 한참을 뒤집힌 것이다.

이러면 정치가 국민의 마음을 살수가 없다.

우리는 정 대표를 걱정하기 이전에 3천명 영세상인의 아픔을 걱정하는 대통령의 말씀부터 먼저 있었어야 했다고 판단한다.

정치자금.대선자금의 고해성사 제안은 그 다음이어야 했고, 그것도 하려면 선청후야(先靑後野)-민주당이 먼저 자백하고 야당을 압박하는 것이 문제를 일으킨 결자(結者)의 자세일 터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검찰총장, 청와대는 야당을 물고 늘어지고 있으니 속보인다는 것이다.

더구나 여야 합의로 특별법을 만들어 대선자금에 대한 면책규정을 둘 수도 있다는 문희상 비서실장의 발언은 '담합사면'의 비의회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쯤되면 '굿모닝 시티'의 윤창열이 이 나라 정치개혁의 일등공신이 될 지도 모르겠다.

불법을 편법으로 푸는 '아이디어'로는 이 난국 풀리지 않는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