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세계속으로...인적 네트워크 필요

입력 2003-07-12 08:40:56

경북 칠곡의 이인기 국회의원은 경남도가 현안이 생기면 도지사, 부지사, 실국장, 실무자들이 상경해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는 물론 정부 부처 실무자까지 만나 종합 로비를 펼치는 모습을 '아름다운 투쟁'으로 표현한다.

"경남의 공직자들은 참으로 주민들을 위해 일하는 일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디다.

어떻게 파악했는지 거절하기 힘든 분을 통해 부탁을 해요. 대구·경북의 중앙 로비력은 경남의 반(半)에 반도 안될 겁니다".

대구·경북은 인재의 산실이다.

근년에 많이 위축되긴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대구·경북의 인맥이 곳곳에 포진해 나라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대구·경북은 이들을 이용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과거 영남 정권 30년 동안에는 민원과 현안 해결을 위해 사람을 알 필요가 없었다.

사람 귀한 줄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행시 출신인 국무총리실 길홍근(41) 홍보과장은 "대구·경북 현안과 관련된 얘기를 한번도 들어본 적 없다"며 "고향을 돕기 싫은 사람이 있겠냐마는 방법을 모르는데 어쩌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제 외부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여야 권력변동이 계속되며 대구·경북은 주류에서 밀려나고 있다.

대구·경북 출신 인사 한 명이 아쉬운 형편이다.

없는 집에 인정(人情)은 있다 한다.

없는 집에 인정마저 메마르면 집안이 잘될 리 없다.

대구·경북의 인적 네트워크 구축 필요성이 자연스레 제기된다.

중앙과 지방의 연결고리 찾기는 이미 시작됐다.대구·경북개발연구원이 주도하고 있는 '21세기낙동포럼'이 그 시작이다.

낙동포럼은 역외 인사 8천명 등 대구·경북 사람 1만여명의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했다.

대구U대회 이후 창립총회를 갖기로 하고 홈페이지 구축 작업도 벌이고 있다.

대경연구원 오창균 박사는 "지하철 참사를 겪으며 대구·경북의 내적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며 "대구·경북 출신인사들이 서로 지식, 경험, 아이디어, 비전을 나누는 '낙동 포럼'이 지역을 변모시키는 구심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인가 개혁인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인사에게 개방하는 것이 포럼의 원칙이다"며 "대구·경북 사람 사이에, 지역과 출향인사 사이에 혹시 벽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상호 불신과 배타적 부분이 있다면 이를 털어내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낙동포럼은 일단 방향은 제대로 잡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완전 민간 주도는 아니지만 대구시나 경북도가 아니라 연구원이 실무를 맡았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구포럼이 아닌 낙동포럼이란 이름에서 보듯 경북이 대구와 대등하게 머리를 맞대기로 한 것도 모처럼 만의 일이다.

대구·경북의 현실을 냉엄하게 살펴보고,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시작해 지역의 미래를 다시 그리려 한다는 소식에 출향 인사들까지 기대감을 표하고 있다.

문제는 내용이다.

포럼에서 요란한 심포지엄 몇번 연다고 실효가 있는 것은 아니다.

포럼에서 아젠다가 제시되면 이를 각론화해 구체화시키는 작업이 따라야 한다.

필요하면 전문기관에 용역을 줘야하고 또 필요하다면 관계자가 모두 모여 '작전 회의'를 하고 결과에 따라 역할을 분담해 일을 추진해야 한다.

출향 인사 관리도 주먹구구가 아니라 과학적이어야 한다.

그냥 애향심에 기대서는 한계가 있다.

정기적으로 연락 하고 역할도 주고,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끼리 다양한 모임도 주선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서성동 한국사회연구소장은 "대구·경북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현명하다고 생각한다"며 "대구와 경북, 중앙이 할 역할이 따로 있는 만큼 동기를 부여한 뒤 분야별로 네트워크화 해 지혜를 모으도록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뭘 맡겨 놓은 것처럼 정부에 내놔라 하면 안된다"며 "대구·경북의 주장을 들어보면 총론만 있고 각론에 들어가면 아무 것도 없었다.

이는 어린애가 표현력이 부족해 징징대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시민 합의'에 의한 지역을 대표하는 포럼이 되느냐 마느냐는 낙동포럼 성패의 관건이다.

기존 지역 사회의 주류끼리 모이는 자리라면 포럼 자체가 무의미하다.

다양한 계층의 수구-보수-개혁-진보 세력이 모두 모여 지역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영남대 김태일 교수는 "혁신적 사고를 가진 젊은이가 대거 참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포럼이 돼야 한다"며 "지자체가 제시하는 의제(議題)를 단순 재생산하는 구조라면 시민 합의를 얻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경계했다.

낙동 포럼과 별도로 지역내 인적 네트워크 가동도 지역 혁신과 발전을 앞당기기 위해 가볍지 않은 무게를 갖고 있다.

대구·경북의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법조계, 의료계 등 오피니언 리더들이 한 목소리를 내 본 경험이 많지 않다.

대학끼리 서로 무시하고, 언론끼리 서로 외면하고 그래서 공론이 필요할 때 여론 형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을 그르치기도 했다.

한 지역에서 함께 호흡하면서도 서로 인정하지 않은 탓이다.

가장 개혁적이어야 할 시민단체에도 논의를 통합하는 의사소통 구조가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 대구·경북의 현실이다.

새대구경북시민회의 최현묵 집행위원장은 "시민단체협의회를 만드는 것이 올해 목표"라며 "건강한 지역 여론을 형성하려면 오피니언 리더들끼리 자주 만나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제 시작이다.

추락하는 지역을 두고 볼 여유가 우리에겐 없다.

대구지방국세청장을 지낸 최명해 국세청 조사1국장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데 뜻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다고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므로 서로 이해하고 양보해 고향 사랑에 힘을 쏟는다면 대구의 장래는 밝다"고 말했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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