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노인들의 '맏며느리'
"젊었을 때부터 꼭 해 보고 싶은 일이 무료급식소였습니다.
이제는 한참 하다보니 어느 새 남 밥 퍼 주는게 본업이 되고 말았지요".
사단법인 '사랑의 손잡기 실천 본부' 조현자(46) 이사장은 스스로를 '별종'이라 했다.
6남매 중 셋째딸로 태어나 잘 나가던 사업가에서 사회복지가로 변신한지 10여년. 1995년 대구 둔산동에 '수녕의 집'을 열어 노인 무료 급식을 시작했고, 지난 5월 초에는 대구 내당동에도 '나누우리' 무료 급식소를 열었다.
나이보다 곱다는 말에 "시집을 안 가 그렇지"라고 대꾸하는 조 이사장은 미혼. 생전 시집살이라곤 해 본 적 없지만 급식소를 찾아 오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시부모나 친정 부모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전국을 돌며 의류 유통업과 행사 기획에 종사하던 시절, 조 이사장은 업계에서 상당한 월급으로 동업을 제의할 정도로 추진력과 장사 감각이 촉망받던 '큰 손'이었다고 했다.
외국에서 물건을 들여와 팔기도 했고 바자를 열어 제법 많은 돈도 모았다고 했다.
무슨 아이디어든 실천만 하면 성공할 것 같던 시절.
그러나 천명(天命)이었을까? 늘 가슴 속에 품고만 있던 밥 퍼주기 봉사를 시작할 계기가 갑작스레 다가왔다.
1994년 1월, 일 마치고 차를 몰고 오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목뼈가 부서지고 하반신이 불구가 될 수도 있는 중상. 절망의 문턱에 선 그에게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다'던 노인 무료급식소가 생각났다.
병상에서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동구 둔산동에 76평 짜리 한옥을 사들여 무료급식소로 개조했다.
들어간 사비는 집값과 개조비를 포함해 1억여원.
하지만 무료급식소는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급식소 입지에 반대했다.
주변에선 독지가 행세하며 정부로부터 돈 받아 먹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에 찬 눈초리가 쏠렸다.
심지어 사기꾼이라느니, 국회의원 출마하려고 설친다느니 하는 황당무계한 소문도 돌았다.
무료 급식 받으러 와서까지 떵떵대던 부잣집 노인이 밉살스러워 하는 마음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 이사장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노인들을 대했다고 했다.
"세상엔 나한테 득되는 사람도 있지만 때로 찌르는 침 같은 사람도 있는 법 아닙니까? 이익이 아니라 옳은 길을 따라 꾸준히 나아간다면 모두 나를 따라 주리라는 신념을 다지고 다졌습니다".
이제 급식이 있는 매주 수.금요일이면 150여명의 노인들이 길게 줄을 선다.
어떤 노인들은 장난도 마다지 않을만큼 됐다.
"할마시 오늘 속 바지 무슨 색 입었나 보자"고 치마를 들추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 그리고 급식날 '수녕의 집'은 조 이사장의 웃음소리로 왁자지껄한 장터로 변한다.
진심을 알게된 노인들이 건네는 속깊은 마음이 가끔은 조 이사장을 감동케 하기도 했다.
지난 달 초 복지시설 견학 차 일본으로 떠나려 할 때 한 할머니는 차비하라며 3만원을 꼬깃꼬깃 접어 몰래 건넸다.
어떤 할머니는 팔팔 끓인 물에 박카스 한 병을 데워 보약이라며 마시라고 권했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한 노인의 부인은 "그동안 우리 영감에게 밥을 줘 고맙다"고 인사를 오기도 했다.
어떤 할머니는 휴지에 돌돌 만 루즈솔을 선물이라고 줬다며 조 이사장은 "아무래도 며느리 걸 훔쳐왔지 싶다"고 웃었다.
하지만 조 이사장이 늘 싹싹하고 고분고분하기만 한 것은 절대 아니다.
IMF사태 직후이던 1998년 자신이 노숙자.실직자를 위해 대구 두류동에 연 쉼터인 '근로자의 집'에서는 쩌렁쩌렁 호령하는 큰누님으로 변한다.
50여명의 거친 남자들을 대해야 하다보니 보통 배짱으로선 안되더라는 것. 한창 사업에 매달리던 시절 바자회장으로 쳐들어 온 깡패들과 맞붙어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이력이 효력을 나타냈는지도 모를 일. 하지만 그 호령의 밑바닥에 근로자의 집 남자들을 '가족' '식구'라 부르는 애정이 서려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 조 이사장이 지난 5월 초 두번째 무료급식소인 '나누우리 급식소'를 대구 내당동에 열게 된 데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수녕의 집이 월 100여만원, '근로자의 집'이 월 700여만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지만, 집세.인건비.식대.전기료 등을 내고 나면 빠듯할 정도여서 운영난이 닥쳤던 것. 그러던 중 2000년에 근로자의 집 '식구'의 아이디어에 따라 현재 나누우리 급식소로 쓰이는 3층 건물을 구입해 1층에 대형 슈퍼를 냈다.
그 '식구'들과 함께 일하면 그들의 자활을 도울 수 있고 수익금을 운영비로도 보탤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경험 없이 일을 크게 벌린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수천만원에 달하던 물건 구입비 등을 손해 보고 장사를 접어야 했다.
하지만 조 이사장에겐 시련은 있어도 포기는 없었다.
슈퍼를 무료급식소로 개조키로 마음 먹어 버린 것. 자재비를 아끼려고 직접 2.5t 트럭을 몰고 싼 값에 나온 식당용 식탁과 의자를 구하러 사방으로 쫓아다녔다.
중고 싱크대를 구입할 때는 몇 만원때문에 호통이 오갔다.
"원래 스텐으로 돼 있다며 9만원이나 달래요. 그래서 그랬지요. 원래는 기생 이름이 원래고 뭣이 그렇게 비싼 거요?" 조 이사장이 역경을 이겨내는 바탕에는 그런 낙천적인 성격과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나누우리 급식소는 그런 난관 끝에 완성됐고, 지난 5월 초 문을 열었다.
급식일은 화.목요일. 이젠 제법 입소문이 퍼져 200여명의 '단골'이 찾는다고 했다.
멀리 떨어진 경로당에 있는 노인들은 승합차로 태워 오기도 한다.
"자~알 먹고 갑니다" 하는 노인들의 답례에 더 힘을 얻는다고.
이 급식소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후 알뜰장도 열린다.
이날 하룻동안 급식소가 친근한 동네 분식점으로 변하는 것. 떡볶이, 국수, 잡채, 파전이 무차별로 접시당 1천원. 직접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전을 뒤집는 조 이사장의 손길이 분주하다.
조 이사장은 일본의 양로원, 장애인 및 어린이 시설 등을 둘러보고 느낀 것이 많다고 했다.
"우리 정부의 복지정책은 장기적인 비전이나 사후 평가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일단 일을 벌려 놓으면 그냥 굴러간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 급식소에서 저 급식소로, 또 노숙.실직자 쉼터로 밤낮 뛰어 다니느라 너무도 바쁘다는 조 이사장은 "마누라라도 하나 둬야 하겠다"고 해 주위를 웃게 만들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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