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아주 거대한 집단이므로, 운영에 필요한 결정들을 일일이 시민들의 개인적 결정들로부터 이끌어내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옛적부터 왕이나 대통령과 같은 정치 지도자에게 책임과 권한이 집중되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정치 지도자의 책임과 권한도 늘어났다.
그래서 지금 대통령이나 수상은 옛적 황제나 왕보다 훨씬 큰 책임과 권한을 지녔다.
그러나 그렇게 중요해진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의 능력은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자연히, 대통령직이 요구하는 능력과 어떤 대통령이 갖춘 능력 사이엔 큰 틈이 있게 마련이다.
어쩔 수 없이 새 대통령은 긴 수습 기간을 거치게 된다.
누구도 준비된 상태에서 대통령직을 맡을 수 없다.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자부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실패가 이 점을 아프게 일깨워준다.
실제로 그렇게 자부할 만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은 김 대통령이었다.
그의 능력은 전설적이었고, 그의 이력은 어떤 정치적 과제들도 다룰 수 있다고 여겨질 만큼 화려했다.
그러나 야당 지도자로서의 이력은 아무리 화려했더라도, 한 나라를 이끌고 경영하는 대통령 직책에 대한 준비로는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능력과 이력에서 김 대통령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그의 임기 초반에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해하기 힘든 것은 노 대통령이 당선된 뒤 줄곧 '준비된 대통령'처럼 처신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누구라도 배워야 할 것이 많으며 자신은 특히 그러하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지 못했던 듯하다.
그리고 그의 실수들 가운데 큰 부분이, 특히 그에게 그리도 많은 구설수들을 안긴 그의 가벼운 언행이, 거기서 나왔다.
다른 대통령들과는 달리, 국가정보원의 일반 보고를 받지 않겠다는 그의 선언은 이런 정황을 잘 보여준다.
대통령이 국가 운영에 필요한 종합적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선 국정원이 그런 정보들을 최종적으로 모으고 분석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이 틀이었다.
따라서 국정원의 보고를 받지 않겠다는 얘기는 국가의 정보수집 체계가 얻어서 분석한 정보들에 바탕을 두지 않고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하겠다는 얘기에 다름아니다.
엄청난 책임과 권력이 정치 지도자 한 사람에게로 집중되므로, 어느 나라에서나 그만이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이 있다.
이 사실을 잘 보여주는 예로는 미국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일화가 자주 거론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아래서 부통령을 지낸 트루먼은 루스벨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된 뒤에야 비로소 원자폭탄을 만드는 '맨해튼 계획'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았다.
전황의 판단과 전략의 수립에 그렇게 중요했던 사실을 부통령이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정치가 발전되었고 권력이 비교적 잘 분산된 미국에서도, 대통령은 그런 자리다.
하물며 대통령에게 권력이 유난히 많이 쏠리는 우리 나라에서랴.
대통령에 집중된 책임과 권한이 하도 커서, 누구도 준비된 상태에서 취임할 수 없고, 새 대통령은 열심히 현장실습(on-the-job training)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데서 노 대통령의 거의 치명적인 실수가 나왔다.
즉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전략을 제대로 세우기 전에 여러 어려운 문제들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그래서 충분한 정보를 얻어 새로운 판단을 내리면, 말을 바꾼 사람이 되곤 한다.
그 자신과 우리 사회에 특히 해로웠던 것은 노사관계에 관해서 노조에 기운 견해를 밝힌 일이었다.
이제 노 대통령도 그런 사정을 알아차린 듯하다.
요즈음 나온 정책의 변화는 거기서 나온 듯하며,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한 그의 원칙적 대응은 그의 대통령직 현장실습이 거둔 뚜렷한 성과로 보여진다.
대통령직이 그리도 중요하고 힘든 자리이므로, 대통령의 학습은 임기 내내 이어져야 한다.
노 대통령의 장점들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잘못을 선뜻 인정하고 자신의 생각을 바꾼다는 점이다.
정치 지도자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 물론 시민들도 그를 지지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구름 덮인 현 정권의 앞날을 가르는 한 줄기 밝은 햇살이다.
복거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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