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대구·경북 다시...-대구·경북 유권자 투표 형태

입력 2003-07-07 09:18:15

지역 유권자들의 특정당 싹쓸이 투표는 지난 1988년 여소야대 정국을 부른 13대 총선때부터 시작됐다.

이후 투표는 대부분 지역감정과 YS, DJ 등 특정인에 대한 반감에 의해 결정됐다.

13대 당시 지역의 민정당에 대한 몰표는 지역감정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당시 정국을 주도하고 있던 집권 민정당은 대구, 평민당은 호남, 민주당은 부산, 공화당은 충남 등에서 몰표가 나왔다.

대구는 당시 전체 8석 중 민정당이 8석 모두를 획득했다.

경북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각 2석씩을 차지했을 뿐 지역에서 민정당 외에는 발을 붙일 곳이 없었다.

그러나 지역의 압도적 지지에도 불구, 민정당은 과반 의석확보에 실패,여소야대 정국을 맞았다.

13대와 달리, 1992년 14대에는 국민당과 무소속이 강력히 부상했다.

선거결과 대구·경북에서 국민당과 무소속은 전체 32석 중 10석을 차지했다.

당시 국회 과반의석 확보를 노렸던 민자당은 대구·경북에서의 국민당, 무소속 약진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같은 선거결과는 당시 민자당의 계파간 나눠먹기 등 공천과정의 일방통행에 지역민들이 등을 돌린 결과로 분석됐다.

1996년 15대와 2000년 16대 총선의 싹쓸이 경향은 극명했다.

15대 때는 대구·경북 총 31석 중 자민련이 10석을, 무소속과 민주당이 9석을 획득해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에 참패를 안겨줬다.

특히 대구에서는 전체 11석 중 자민련이 8석을 차지하는 바람에 여당 후보는 강재섭, 김석원 후보를 제외하고 모두 낙선했다.

경북도 신한국당이 11석을 얻기는 했지만 무소속(5석), 자민련(2석), 민주당(1석) 등 야당에게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의석을 내줬다.

당시 선거결과는 대구·경북의 반 YS 바람 탓이었다.

15대 때 자민련을 지지했던 지역 유권자들은 2000년 16대에 들어 한나라당 쪽으로 급선회 했다.

이 역시 '반DJ'로 인한 반대급부로 해석됐다.

당시 한나라당은 대구와 경북 27석을 모두 석권해 제1당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렇지만 4년전에 자민련 후보들을 대거 당선시켰던 지역 유권자들이 한나라당 후보라는 이유만으로 초·재선 의원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아 문제로 지적됐다.

실제로 대구 수성갑의 김만제, 남구의 현승일 의원 등은 그해 2월에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대구로 내려와 '6공황태자'로 불리던 3선의 박철언 의원, 건설교통부 장관 출신 재선의 이정무 의원을 누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상곤기자 lees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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