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대구·경북 다시...-지역정치 한단계 높이기

입력 2003-07-07 09:18:15

맹자에 송나라 농부의 우화가 있다.

어리석은 농부가 모가 더디 자라는 것이 안타까와 볏대를 뽑아 잡아늘인 뒤 다시 꼽고 돌아와 한 마디 했다.

"오늘 참 피곤하다.

싹이 자라는 것을 내가 도와 주었다"고 말했다.

깜짝 놀란 아들이 뛰어가 보니 곡식은 이미 말라죽어 있었다.

'급하게 일을 보려다가 도리어 해를 당한다'는 '알묘조장( 苗助長)'또는 '조장(助長)'이라고 흔히 쓰이는 고사성어는 이 우화에서 비롯됐다.

요즘 지역 정치 현주소를 이 사자성구로 표현하면 무리가 따를까. 그러나 최근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와 당직 경선에 나선 지역 출신 정치인들이 모조리 낙선하자 지역 한나라 당원들 사이에선 열패감을 느끼고 '더 이상 이 당을 지지해야 하느냐'라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다.

지역에선 여러 인물들이 나섰다가 줄줄이 낙마하자 지레 지역 한나라당의 몰락과 연결시키는 성급한 시각도 있다.

한 번의 실패로 좌절하고 지역은 이젠 끝났다느니 모두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무색하다.

이는 '독불장군 식 행태'와 의원들간 사분오열 등 여러가지가 패인으로 꼽히고 있지만 사람을 키울 줄 모는 지역 정치풍토가 한 몫을 했다는 지적이 오히려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현재 지역 풍토는 너무 경직돼 있다.

지역 정치의 패러다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부터 변해야 한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조급증을 버려야=지난 95년과 2000년 총선 때 분위기가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95년 15대 총선때는 반 YS바람이, 2000년 16대 총선 때는 반 DJ바람이 지역을 휩쓸었다.

15대 때 당선됐던 자민련 의원들은 4년 후 그 유권자들에 의해 무더기 낙선했다.

16대 때는 한나라당이라면 "막대만 꽂아도 된다"는 말이 유행했다.

유력 주자였지만 비 한나라당은 견뎌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인물이나 정책이 통하지를 않았다.

한 예로 지난 16대 총선 당시 이정무 전 의원(대구 남구)은 선거 후 곧바로 짐을 쌌다.

이 전의원은 "낙선은 각오했다.

그러나 대구에서 30년 넘도록 살았고 12년 동안 지역구를 관리했는데 대구에 온 지 두 달밖에 안된 한나라당 후보에게 그런 표를 준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한나라당에도 요즘 이같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 전당대회와 당직 선출과정에서 지역 의원들이 줄줄이 낙마한 후 이 같은 분위기는 더욱 확연하다.

"그동안 밀어줬는데 답이 겨우 이거냐"는 것이다.

곧 한나라당과 등을 돌릴 것 같은 분위기다.

이에 대해 한 정치 평론가는 "이제 대구·경북 유권자들도 평정심과 균형감각을 되찾아야 한다"며 "지역 출신이 당권에 도전했고 운영위원 선거에서도 40대가 두각을 나타낸 것 등을 보면 소중한 가능성이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극단을 치닫곤 하는 유권자들이 지역의 정치토양을 길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도 했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중요=노무현 신당을 준비하고 있는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똘레랑스(Tolerance)' 필요성을 얘기한다.

신당을 통해 영남권 진출을 꾀하고 있는 민주당 입장에서는 매우 완곡한 표현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는 우리 지역 정치가 얼마나 경직돼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선, 총선 할 것 없이 10%대 지지율로 외면당해온 입장에서는 지역 유권자들의 폐쇄성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특정 정당의 독점적 정치지배구조의 폐해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당장 주민들 입장에서는 특정 당에 대한 일방적인 지지로 자승자박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정치서비스의 질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 피해는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유권자들의 맹목성을 부추겨 온 지역 정치세력의 문제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론과 정보를 독점하는 세력들에 의해 유권자들은 들러리를 설 수밖에 없었다.

정치인들은 또 맹목적 지지를 보내는 유권자들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선거 때만 지나면 언제 봤느냐는 식이다.

이에 대해 김태일 영남대 교수(정치학)는 "특정당에 대한 시민들의 맹목적 지지는 소위 정치적 '동종교배' 라고 볼 수밖에 없다"면서 "지하철 참사 시행착오에 대해 시의회가 집행부에 일언반구라도 했느냐"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역 정치 변화의 핵심과제는 정치적 다양성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물중심으로 뽑자=지역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는 내·외부 모두 중요하다.

특정 정서와 특정 당 위주의 선거는 지역 주민들의 자존심과도 직결된다.

즉 "우리가 뽑은 선량이 서울과 여의도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를 봐야 한다"는 말이다.

맹목적 투표로 잘못된 선택을 할 경우 유권자 스스로 제 발등을 찍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지난 16대 총선 때 호남출신 유력 정치인이 당 공천에서 탈락한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이 인사의 낙천은 당 지도부의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자질'을 문제삼은 광주시민들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선거 때 후보에 대한 평가를 유권자들에게 맹목적으로 맡길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후보에 대한 정보공개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유권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따라서 현직 국회의원과 후보자에 대한 정보공개가 선행돼야 한다.

현직 의원의 경우 지난 4년간 의정활동에 대해 냉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이 경우 설령 특정 당에 대한 선호 분위기가 있다손 치더라도 냉정한 선택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정치인의 특권의식과 유권자들의 정치무관심을 털어 낼 수 있다.

지역 정치의 성숙은 결국 유권자들의 몫이다.

이상곤기자 lees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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