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밥이고 약입니다

입력 2003-07-04 10:42:20

"오빠야, 그거 밟지 마라. 우리 선생님이 카는데 나무나 풀도 괴롭히면 아파서 운다 카시더라".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너거 선생님 말, 그거 말짱 뻥이다.

그라만 왜 이래 가지를 꺾어도 비명 한 마디 안지르고 가만히 있겠노? 학원 시간 늦겠다.

빨리 따라 오기나 해라".

교장실 창 밖에서 들려 온 아이들의 대화입니다.

일어나서 내다보니 오누이인 듯한 두 아이가 교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무실 앞 화단 가에 옥매화 가지가 꽃잎 몇 개를 단 채 던져져 있었습니다.

아이가 꺾어서 버린 것은 옥매화 가지가 아니라, 옥매화를 아름답게 바라보는 마음일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아이가 '뻥'이라는 말로 부정한 것은, 세상의 모든 타자에 대한 사랑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제 생각을 바로 말한다면, 그 아이가 버린 것은 바로 시심(詩心)이며, 시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아이는 너무 일찍 시를 버리고 이 풍진 세상을 바쁘게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어 정말 걱정입니다.

최근 TV에서 '아토피와의 전쟁'이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탄산음료와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진 우리 아이들의 건강이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학자는 이런 식품을 자주 먹는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범죄율이 높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토피 피부염 만큼 걱정해야 할 것이 어쩌면 시심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마음벽에 번지고 있을 아토피 염증인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의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그들이 하는 공부의 먹을거리는 대부분 정형적 사고에 의한 인식활동이나 기억 또는 암기를 요구하는 것들이며, 그 공부의 과정 또한 과도한 경쟁으로 점철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공부를 올바른 방법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따뜻한 감성을 동원하여 스스로 느끼고 감동하고 꿈꿀 수 있는 공부 먹을거리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데 있지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생활리듬으로 인해 쉽게 지치고 또 과도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조급하고 공격적인 성정을 보이게 되겠지요.

피부병 아토피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유기농산물을 먹여야 한답니다.

마음의 아토피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시를 밥처럼 먹도록 해야 합니다.

시가 밥이고 시가 약입니다.

김동국(아동문학가.문성초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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