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데이비드 조지 고든 지음/뿌리와 이파리 펴냄)
보통 여자들의 천적은 '뱀'이라고 하지만 집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천적은 '바퀴벌레'일게다.
흉칙한 모습으로 언제 어디서고 기어나오고, 아무리 약을 뿌려도 잘 죽지 않는 끈질김은 웬만한 사람을 질리게 하고 만다.
그러나 이 바퀴벌레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만만한 생물이 아니다.
어쩌면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고, 더 오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완벽한' 생물이다.
최소한 '바퀴벌레'(뿌리와 이파리 펴냄)라는 책을 펴낸 데이비드 조지 고든에 의하면 그렇다.
'지구상에서 가장 멸시받는 그리고 가장 미스테리한 생물에 대한 포괄적 지침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에서 그는 '바퀴벌레는 인간의 오만과 편견에 맞선 세상 모든 생물의 지존'으로 묘사하고 있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라기 보다는 다소 전문적이고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그린 전문서적이긴 하지만 인간과 가장 친밀하게 동거하고 있는 생물을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기원에서부터 서식지, 섹스와 번식, 그리고 인류문화에 미친 바퀴벌레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바퀴벌레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바퀴벌레'는 3억4천만년전인 고생기의 초기 석탄기시절부터 존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때는 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호주, 남극에 이르기까지 전 대륙이 거대한 단일 대륙으로 뭉쳐 있었고, 공룡이 출현하기까지는 1억5천~1억8천만년, 인간이 나타나기 까지는 3억년을 기다려야 했던 시기이다.
당시 바퀴벌레는 600여종에다 지구상 곤충의 약 40%였던 것으로 추정돼 일부 고고학자들은 석탄기를 '바퀴벌레의 시대'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이다.
모든 환경에 살아갈 수 있도록 적합하게 만들어진 까닭에 사막과 온천, 설산, 협곡에 이르기까지 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며 보고된 것은 3천500여종이지만 많은 곤충학자들은 약 5천~6천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외관의 혐오스러움과 언제 어디서고 불쑥 나타나는 무례함, 한마리가 3천500만마리까지 늘어나는 감당못할 번식력, 머리가 잘려도 수주일 살아남는 끈질긴 생명력, 알레르기와 천식 등 각종 병을 일으키는 매개체 등 바퀴벌레의 추악함은 끝이 없다.
'하늘 아래 아무 의미없이 창조된 것은 없다'는 말처럼 바퀴벌레는 식물의 생식을 도와주는 수분 매개체, 상위 동물의 먹이, 곤충의 공존, 영양물질의 재순환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어 이 바퀴벌레가 한꺼번에 사라진다면 이와 함께 수십만종의 척추동물과 식물이 곧 사멸하고 마는 생태계의 주요 배역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에피소드 하나. 1988년 이스라엘 예루살렘 포스트지는 바퀴벌레 한 마리에 따른 소동기사를 실었다.
한 주부가 치열한 전투끝에 바퀴벌레를 잡아 변기속에 넣고 분무 살충제 한통을 퍼부었는데 그녀의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와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를 변기속에 던져 넣어 화상을 입었다.
앰뷸런스 구조 요원이 출동, 사건의 전말을 듣고 웃는 바람에 계단에서 들 것을 놓쳐 그녀의 남편은 이미 입은 화상과 함께 골반과 늑골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
지은이는 바퀴벌레를 열심히 예찬하고 싶지만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는 당신'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정지화기자 jjhwa@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