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 넣었던 대구지하철 사고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져 가고 있다.
그러나 사고는 잊혀지더라도 사고가 남긴 교훈마저 잊어서는 안된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소중한 생명을 잃은 이들, 지금도 병원에 누워 있는 부상자들, 화염과 매연 속에서 인명구조에 나섰다가 부상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소방관들, 그리고 그 모든 이들의 가족들, 사고로 인해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은 대구시민들, 모두가 이번 사고의 희생자들이다.
그 엄청난 희생을 결코 헛되게 해서는 안된다.
이제 그 희생의 의미를 되새기며, 그들에 대해 진정으로 예의를 갖추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대구 지하철 사고는 우리 사회의 사고 예방과 사후 수습체계에 얼마나 많은 문제점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 주었다.
지난 1995년의 상인동 지하철 참사 이후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지하철 사고가 일어났으며 대응의 난맥상도 그대로 재연된 것이다.
유사 사고의 재발도 문제지만, 안전관리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못했다는 것은 더욱 큰 문제이다.
우리는 대구 지하철 사고 이후 일본의 소방연구소, 오사카대학, 고베대학 등에서 조사단을 보내 온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성수대교 붕괴와 지하철 사고, 미국의 9·11 테러 등 큰 사고가 발생한 곳에는 어김없이 조사단을 파견하여 사고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한 자료를 축적하며 이후의 안전사고에 철저히 대비한다.
일례로 한신 대지진 때에는 건물의 횡근(건축물 주근과 주근 사이를 잇는 것)이 25cm 간격으로 설치된 건물은 거의 다 무너진 데 비해 10cm 간격으로 설치된 건물은 무사했다는 점을 발견해, 이후 건축법에서는 횡근 간격을 5cm로 줄였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은 최근에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방재대학 설립을 확정했다.
안전관리시스템이 사고를 온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희생은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예컨대, 길이가 11km인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의 몽블랑 터널 화재에서는 39명이 사망했으나, 터널 길이가 16km인 스위스 고타르 화재의 사망자는 13명에 그쳤다.
고타르 터널의 뛰어난 배연 설계가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 몽블랑 터널도 화재사고에 대한 조사·분석을 통하여 배연 용량을 2배로 확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5년부터 과학기술부의 방재 기술개발사업으로 화재분야 연구를 추진하고 있지만, 연 평균 2, 3과제로 미미하며 연구비도 일본의 40분의1 수준인 4억원에 불과하다.
또 과제중심의 개발사업은 중단기적 기대효과에 그치며, 과제내용도 단편적이어서 문제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화재안전 인력 또한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전문연구소 설립이나 위기 관련 제도의 통합 등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뿐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부상자의 탈출 경로나 사망자가 발견된 위치, 역사(驛舍)의 구조와 동선 등 지하철사고와 관련된 모든 정황 자료들을 축적하여 안전관리시스템의 기본 자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위치나 입장, 또는 관점에 따라 가치의 기준이나 판단의 척도를 달리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기에 앞서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 올바른 길일지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지난 일들을 제대로 수습하고 새로운 내일을 위해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남의 탓만 하고 있을 것인가?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대구를 안전의 성지로 만드는 것이다.
과학적이고 통합적인 사회 안전시스템 구축에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사고 수습은 빠르고, 상처는 쉽게 아물어야 한다.
그러나 사고의 교훈은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일일 뿐 아니라, 억울한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다.
이상천〈영남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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