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는 사실상 지난해부터 조용할 날이 없었다.
김대중 정부가 민영화 작업을 임기 내에 끝내겠다는 방침을 굳히면서 작년 2월 노조가 이틀간 총파업했고, 뒤이어 지난 4월엔 같은 문제로 파업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그 이후 두달여만에 또 파업이 일어난 것. 특히 이번 파업은 노동계의 이른바 하투(夏鬪)와 맞물려 완전 해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파업 왜 했나?
철도노조는 정부가 지난 4월 협상 때 충분한 협의와 사회적 합의과정을 거친 뒤 철도개혁 입법을 하겠다는 약속을 해놓고 이를 지키지 않은 채 관련 법안을 국회에 상정해 법사위까지 통과시켰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부가 약속을 어겼으니 노조도 최후의 수단인 파업으로 맞서겠다는 것.
현재 정부가 입법을 통해 추진하고 있는 철도 구조개혁의 큰 틀은 시설과 운영의 분리이다.
철도청이라는 정부 단일 조직을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으로 분리, 시설관리는 공단이, 철도 운영은 공사가 맡도록 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철도산업발전기본법' '한국철도시설공단법' '한국철도공사법' 등 3개 법안을 마련해 놓고 있으며, '철도산업발전기본법'과 '한국철도시설공단법' 등은 27일 국회 법사위까지 통과해 본회의 처리만 남겨놓고 있다.
노조는 대외적으로 일단 정부의 구조개혁 입법 작업 자체가 중단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4월 노조에 한 약속대로 노조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하는 철도구조개혁 논의기구를 다시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노조도 '공사화'라는 대세를 완전히 거스르려는 것은 아닌 듯하다.
최대한 조합원들의 이익을 지켜내는 것에 더 큰 목적을 두고 있는 것. 일반 노조원들의 가장 큰 관심은 역시 돈 문제이다.
철도가 공사화되면 현재의 공무원연금 수급 대상에서 탈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이 있어, 노조는 공사화 하더라도 공무원연금 자격은 일정기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또 고속철 건설 부채가 무려 11조원에 이르는 만큼 이를 철도시설공단으로 이관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며 정부가 떠맡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해결 전망은?
지난 정권 때 철도 민영화로 방침이 정해졌다가 이번 정권 들어 노조 압력에 밀려 공사화로 후퇴됐다는 여론의 화살을 맞은 바 있어, 정부도 이번엔 비교적 강경한 자세로 맞서고 있다.
노조와의 협상이 쉽지 않을 것임을 말하는 것.
때문에 정부는 이번 파업에 대해 당초부터 목적·절차상 모두 불법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고, 파업 직전 정부의 '고정 메뉴'였던 밤샘 협상도 사실상 하지 않았다.
파업 첫날 아침부터 경찰력을 노조원 농성장에 조기 투입시킨 것도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읽히고 있다.
협상이 아니라 정부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공무원연금 수급권 연장은 국민연금법 일부 개정 등을 통해 노조와 협상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요구에 대해서는 강경하다.
고속철 부채의 정부 인수 경우만 해도 수익자 부담 원칙이 우선돼야 한다며 고속철을 타지 않을 국민이 많은 상황에서 고속철 부채를 전국민의 부채로 옮겨 놓을 수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노조도 쉽게 뒷걸음질 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몇가지 사안에서라도 결실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철도노조는 지난해 민주노총으로의 상급단체 변경 이후 투쟁 강도가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양측 사정이 이러니만큼 파업은 쉽게 끝내질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파장은 어떨까?
가장 긴장을 높이고 있는 부문은 철도노조의 파업 투쟁이 노동계와 정부의 전면전으로 비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철도노조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은 27일 성명을 통해 철도노조에 대한 강경대응은 임단협 투쟁과 연계한 민주노총의 총궐기로 이어질 것이란 경고를 내놨다.
경찰이 파업 당일 아침부터 공권력을 투입한 만큼 민주노총도 실력행사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진 것.
민주노총은 다음달 2일로 예정된 금속노조, 금속연맹, 화학섬유연맹 등의 총파업에서 '힘'을 보여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더욱이 시민생활과 직결돼 있는 병원의 근로자들이 가입된 보건의료노조도 7월 중순 일제히 쟁의에 들어갈 것으로 보여 민주노총의 '예비된 힘'은 상당한 셈이다.
정부와 노동계가 힘겨루기에 들어갈 경우, 산업계 전반에 미칠 파괴력은 적잖을 수밖에 없다.
수백개 협력업체를 가진 현대자동차 등 자동차업계가 파업의 선봉에 서면 대구·경북 부품업계도 회오리에 휘말릴 전망이다.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종전 정부의 미온적 대처가 지금의 파업 도미노 상황을 불렀다고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줄 것은 주고 주지 않아야 할 것에는 'NO'라고 할 수 있어야 했지만 현 정부가 그런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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