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전쟁이 났다.
아직 가슴에 달은 손수건도 떼기 전이었는데 어느날 서울에서 피난민들이 몰려 내려오고 있었다.
어른들이 수근거리고 할머니랑 어머니는 피난길에 필요할지 모른다고 미숫가루를 만들어 봉지 봉지 담으셨다.
그리고 또 어느날인가 학교가 육군병원으로 접수되었으니 우리들은 교실을 비워야한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고, 그날부터 우리는 강가에 있는 솔밭에다 노천 교실을 만들고 칠판을 소나무에 걸어 놓고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씩 피난민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날 부터인가 학교 가득 부상병들이 트럭으로 실려왔다.
철없는 우리들은 갑자기 읍내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조금만 비가 내려도 공부를 할수 없는 날이 많아지자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학교 근처로 몰려가서 철망 너머로 부상병들을 구경하는게 일과였다.
중상을 입은 군인들은 교실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그래도 움직일 수 있는 부상병들은 운동장에 나와있다가 어린 우리들을 보면 손짓으로 불러 건빵이나 누룽지를 건네주기도 했다.
팔이나 다리를 다친 부상병들을 가까이 가서 보면 아직 스무살도 안돼 보이는 어리디 어린 소년들이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상황도 점차 어려워지고 피난민들은 다리 밑에 가마니를 둘러치고 살기도 하고 그럴 형편도 안되는 사람들은 집집마다 구걸을 다니기도 했다.
가교사 학교에도 피난 온 아이들이 무더기로 들어왔고 어쩌다 구호물품이라도 들어오는 날이면 철없는 우리들은 들떠서 어쩔줄 모르곤했다.
미국에서 왔다는 구호물품은 학용품·옷가지·먹을것 등이었고 그중 몇가지를 배급 받는 날은 집안이 온통 잔치 분위기였다.
거리는 상이군인·거지·양공주로 넘쳐났고 젊은 여인들은 무지막지한 미군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깊은 시골로 피난을 가기까지 했다.
그래도 내고향 경상도는 남쪽이었으니까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전쟁의 와중에 있었던 서울을 비롯한 많은 도시들은 철저하게 부서지고 파괴됐다.
여기에다 이웃도 친척도 믿을 수 없는 불신의 세월속에서 자고 나면 즐비한 시체들이 늘어만 갔다.
굶주림과 공포로 제 정신을 가지곤 살 수 없는 세월 속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게 6·25 전쟁이었다.
그 전쟁을 딛고 지금 우리는 이만큼 살 수 있게 된것이다.
요즘 세계 곳곳에서 겪고있는 전쟁의 참상을 TV로 중계하듯 하고있다.
이를 만화보듯 보는, 전쟁을 겪어 보지 않은 젊은이들은 바로 50여년전에 우리가 겪었던 그 참상이라는 것을 알기나 할까.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이라크 어린이들의 산머루 같은 눈망울을 나는 태연하게 바라 볼 수가 없다.
공포와 굶주림으로 지친 노인과 여인네들-. 부상을 입어도 제대로 치료 받을 수 없어 열악한 환경 속에 그대로 방치된 환자들-. 미군차만 보이면 먹을걸 달라고 손을 벌리며 먼지 속을 기를 쓰고 따라가는 아이들-. 그들 속에서 나는 50여년 전의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그대로 보여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왜 전쟁이 일어나는가? 누가 누구를 무슨 이유로 죽이는가? 우리는 평상시에 강아지 한 마리 죽는 것으로도 호들갑을 떨며 생명의 소중함을 떠들어대면서 죄 없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어가는 걸 그저 영화 감상하듯 바라만 봐야하는가.
다시는 이땅에 전쟁이 일어나선 안된다.
우리는 그 페허 속에 피땀 흘려 이룩한 모든 것들이 하루 아침에 잿더미가 되는 전쟁은 막아야 한다.
그저 미국만 바라보고 처분만 기다려야 하는가! 자꾸 50여년 전의 그 6월이 생각나서 마음이 편치가 않다.
그리고 전쟁의 후유증을 지독하게 앓고있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아이들에게도 우리는 무심할 수 없다는걸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연극배우〉
댓글 많은 뉴스
이진숙·강선우 감싼 민주당 원내수석…"전혀 문제 없다"
"꾀병 아니었다…저혈압·호흡곤란" 김건희 여사, '휠체어 퇴원' 이유는
[사설] 민주당 '내란특별법' 발의, 이 대통령의 '협치'는 빈말이었나
[홍석준 칼럼] 우물안 개구리가 나라를 흔든다
전국 법학교수들 "조국 일가는 희생양"…李대통령에 광복절 특별사면 요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