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조정회의와 번복
○…23일 오후 경북지방노동위 2차 특별조정회의에 들어간 대구지하철공사 노사 양측 대표들은 협상 시작 전부터 피로한 모습을 역력히 드러냈다.
전날도 오전 10시부터 9시간여에 걸쳐 마라톤 실무협상을 했으나 합의 도출엔 실패한 터였다.
예정 시간인 오후 6시를 10여분 넘겨 시작된 조정회의에서는 먼저 공익위원들의 간단한 인사말, 이훈 지하철공사 사장 및 이원준 노조위원장 등의 말이 있은 후 20여분 만에 정회됐다.
저녁 식사가 이유.
그 후엔 양측 실무진끼리 준비 회의를 장시간 하는 바람에 본 조정회의는 오후 8시가 넘어 재개됐다.
조정회의 시작 때는 박중걸 공익위원장이 연대파업이 계획된 부산지하철엔 행정지도, 인천지하철엔 직권중재 결정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전하자 회의장엔 긴장감이 돌기도 했다.
○…회의 중 노사 양측 대표들은 합의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답답한 듯 하나둘 회의장을 나와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또 이훈 공사 사장과 이원준 노조위원장은 회의장을 나와 옆 사무실에서 둘만의 밀담을 나누기도 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는 90여분간 계속된 후 밤 9시40분쯤 끝났다.
이를 통해 기한을 더 늘려 협상을 계속키로 합의했다는 것. 그 직후 이원준 노조위원장은 회의장 밖에서 기다리던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월배차량기지로 가 노조원들에게 회의 결과를 알린 후 파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40여분 뒤 이 위원장이 찾은 곳은 월배차량기지가 아닌 회의가 열렸던 경북지노위 사무실이었다.
"공사측과 합의해 조정기간 연장 신청서에 서명했지만 이를 취소해 달라"고 요구키 위한 것. 이에 노동위 직원들은 당황하며 그 요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심했다.
노동위 관계자는 "노사간에 합의한 문서를 취소해 달라는 요구를 전에는 한번도 받은 적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난처하다"고 했다.
○…노동위는 귀가한 공익위원 3명을 즉각 다시 불러들이고, 관련 법규집을 뒤적이며 관련기관에 문의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다시 모인 공익위원과 노동위 관계자들은 오랫동안 토론한 끝에 "이미 작성된 조정기간 연장신청서는 유효하다"고 결론 내렸다.
어느 한쪽이 취소 요구를 한 것이 유효한지 여부는 필요하다면 민법적 해석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고 관계자는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데도 일부 방송이 밤 10시40분쯤 자막을 통해 '대구지하철 파업 유보'라고 보도해 또한번 혼란이 초래됐다.
지하철공사 관계자는 "파업을 막아보자는 노사간 재대화도 시작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송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노조가 조정기간 연장신청 합의를 뒤늦게 번복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지하철공사 관계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 관계자는 "특별단체협약안이 단체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여러 차례 설명해도 수용 않던 노조가 이제는 합의한 내용마저 일방적으로 바꿔 태도에 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 후 노사 양측의 교섭은 소강상태에 들어갔으나 이훈 지하철공사 사장 등이 노조원들이 있는 월배차량기지로 가 24일 새벽 2시부터 다시 밤샘 협상을 계속했다.
공사 관계자들은 노조가 요구하는 '안전위원회 설치' '정원부족 인력 충원' 등을 놓고 이견을 좁히려 노력하고 있지만 합의 도출이 쉽잖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지하철 현장
○…분위기가 파업 쪽으로 쏠린 뒤 24일 새벽 3시30분이 넘으면서 대구지하철공사에는 파업 돌입 여부를 묻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공사 관계자들도 노조 사무실과 잘 아는 노조원들에게 연락해 알아보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새벽 4시쯤 부산.인천지하철 교섭 결렬 및 파업 돌입 소식이 전해지자 분위기는 비장하게 흘렀다.
월배 차량기지 노조원들도 마찬가지.
전동차 출발역인 대곡.안심역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역무 대체 요원으로 대곡역에 배치된 공사 직원은 "파업 사태에 대비해 실전 연습을 많이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첫 운행시간인 새벽 5시20분을 앞두고는 김종구 상무이사, 남재호 차량운영부장 등이 종합사령실을 찾아 첫차 출발 이상 유무를 다시 점검하는 등 긴장감이 높아졌다.
대곡역→교대역 구간 첫 전동차인 1001호의 운전은 최갑호 신호담당 사령이, 안심역→동대구역 구간 첫 전동차인 2002호의 운전은 김영식 영업팀장이 맡았으며, 양측 첫차가 모두 이상 없이 출발하자 종합사령실에 모여있던 공사 관계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무에 투입될 대체인력들은 새벽 5시부터 역에 대기했다가 첫차 운행시간인 새벽 5시20분에 맞춰 바로 투입됐다.
환승역인 교대역 경우 역장.부역장을 제외한 근무자 10명이 전원 파업에 참가, 매표실에 공무원 2명, 셔틀버스 환승권 교부에 공무원 2명, 셔틀버스 승강장에 자원봉사자(새마을회원) 2명이 배치됐다.
또 신호.통신 등 4개 분소 및 사무실.승강장.대합실 등에 경찰병력 17명이 배치됐다.
지하철 동대구역사에는 신천4동 새마을협의회원 3명 등 자원봉사자 8명이 나와 승객들을 차분히 안내했다.
자원봉사자 박지봉(57.신천동)씨는 "참사 이후 승객들이 많이 준 탓인지 혼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새벽5시부터 신기역 승강장 안전관리 봉사에 나선 류재철(54.율하동)씨는 "자원봉사요원 2명이 번갈아 가며 자정까지 일하기로 했다"며 "생업을 제쳐두고 나온 터라 파업이 너무 오래가면 생계에 지장이 있을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상인역.월촌역.진천역 등 지하철 가스 폭발 참사를 겪은 지역의 시민들은 명분없는 파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심까지 출퇴근한다는 박모(40.대곡동)씨는 "지하철 사건 수습도 미진한 상황에서 파업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김민학(46.대곡동)씨는 "지하철은 서민들이 이용하는 만큼 파업은 서민을 볼모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행동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박원영(18.대구고 3년)군은 "지하철 사건 때도 학생들의 등하교 불편이 컸는데 이번 파업 때도 되풀이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상인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던 이 동네 유모(55)씨는 "지하철 노조가 파업까지 간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시민들의 불편은 누가 보상해 주느냐"고 불평을 터뜨렸다.
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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