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염색업계 활로는

입력 2003-06-24 09:30:37

"변해야 산다".

지역 염색산업이 붕괴 일보 직전이다.

최근 군소업체들의 줄부도에 이어 굵직한 중견 섬유 기업들까지 염색공장을 매각, 분리하면서 지역 염색산업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사상 유례없는 경기 침체는 지역 염색업체들의 불황 극복 의지마저 꺾어 놓았다.

업체들은 투자에는 손을 놓고 경기가 다시 살아나기만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지역 염색산업의 장기 불황은 시장개척 노력과 능력이 미약한데다 70, 80년대 대량생산체제를 아직도 고집해 생긴 구조적 불황으로 기존 체제의 대대적 혁신없이는 결코 살 길을 찾을 수 없다.

지역 염색업체에 불어닥친 구조적 위기와 그 해결방안을 살펴봤다.

◇구조적 위기

공급 과잉으로 3년전부터 시작된 장기불황은 올해 들어 미-이라크 전쟁, 사스 등에 따른 세계 경기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지역 염색산업을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다.

지역 중견 ㅅ업체가 올 초 구미 염색공장을 매각했고 뒤이어 성서공단내 ㄴ섬유 등 10여개에 이르는 군·소 염색업체들의 줄부도 사태가 벌어졌다.

구미 ㄷ방직, 대구 ㄷ교역 등 지역 염색업계의 거목들이 잇따라 대규모 염색 설비를 가동 중단하거나 가공 공장을 분리했고, 기업개선작업중인 동국무역과 최근 법정관리에 들어간 갑을도 염색산업단지내 염색공장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이같은 지역 염색업체들의 위기는 이미 90년대초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당시 중국의 저가공세에 따른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로의 고부가가치화가 염색산업의 화두로 떠올랐지만 대부분의 업체들이 대량생산체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염색업체 한 관계자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기존 시설을 전면 교체한 후 막상 시장 개척에 실패할 경우 한 순간에 망할 수밖에 없다"며 "지역 염색업체의 90%이상이 마케팅 활동이 취약한 하청업체로 다품종소롯트는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고 했다.

더욱이 IMF이후 일시적 활황으로 범용성 제품 수요가 다시 증가하면서 업체들은 다품종소량생산체제 전환 필요성을 간과하게 됐다는 것이다.

◇염색산업 어디로 가야하나

그러나 최근 섬유산업 3대 비전을 제시한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염색산업의 활로는 기능성, 디지털, 친환경 염색 중심의 다품종소량생산체제뿐이다.

유럽, 미국 등의 섬유쿼터 폐지로 가격경쟁력에서 뒤지는 한국 섬유제품은 중국에 밀릴 수밖에 없어 기존의 대량생산체제로는 더이상 버텨낼 수 없다는 것이다.

산자부는 이달부터 내년 5월까지 1년간 3대 비전 로드맵 작성에 들어갈 예정으로 염색산업의 경우 디지털 염색 파일러트 기반구축, 인텔리전트 염색가공기술 및 환경친화형 염색기술 개발 등을 적극 개발키로 했다.

기능성 염색가공 혹은 특수가공이란 섬유가 가지고 있는 단점을 보완하거나 섬유가 가지지 못한 기능성을 부여하는 후가공을 뜻한다.

기능성 가공 기술중 가장 일반화된 분야는 각종 기능성 물질을 마이크로캡슐에 넣어 섬유 표면에 부착시키는 방법으로 빛에 의해 색상이 변하는 감광 섬유, 온도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감온섬유 등이 그 예이다.

디지털 염색 파일러트와 관련해 현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분야는 디지털 날염이다.

미국 IT Strategies에 따르면 2002년 말 현재 디지털 날염 시장 규모는 173억달러로 올해 186억달러에 이어 2005년 213억달러에서 2010년엔 298억7천400만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디지털날염은 제도, 제판 후 날염기를 통해 무늬를 새겨넣는 기존 날염방식과 달리 모든 공정이 DTP(Digital Textile Printing)기를 통해 단 한번에 이뤄지는 염색기법이다.

보통 일주일 이상 소요되는 제판, 제도 공정을 단 하루만에 끝낼 수 있고, 무한대의 컬러 표현이 가능해 다품종소량생산체제로의 전환이 용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변해야 산다

염색산업의 비전으로 제시되고 있는 기능성, 디지털, 친환경 염색도 기업의 투자 의지가 없는 한 그림의 떡일 뿐이다.

제일모직은 2000년 남성 정장에 방향 마이크로캡슐을 부착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방향 마이크로캡슐은 이미 1992년 공기반 기술사업의 하나로 개발된 기술로 그 시범업체는 대구 ㅅ염직이었다.

지역 업체들은 방향가공 기술을 보유하고서도 상품화에 소홀해 막대한 시장을 놓친 것이다.

지역 염색업체들 경우 세계시장에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디지털 날염 분야에서도 눈치만 살피고 있다.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라 생산 속도가 매우 늦고 신규 시장 개척도 여의치 않다는 것.

그러나 정기자 계명대 겸임교수는 우리의 최대 섬유 경쟁국인 중국 항주시 경우 디지털 날염의 친환경성에 주목, 관련 연구소를 설립해 시를 찾는 VIP고객에게 디지털 날염으로 제작한 넥타이를 일일이 선물하고 있다고 했다.

DTP기 생산업체인 이미지텍 정형희 대표는 올해부터 중국으로 들어가는 디지털 날염기가 급증하는 등 현지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염색업계를 비롯한 지역 섬유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아무도 먼저 투자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잘 된다 싶을땐 너도 나도 달려 들어 제살깎기 경쟁을 벌이기 일쑤다"며 "지역 염색업체들은 당장의 이익보다는 먼 미래를 내다본 장기 투자 전략을 세워야 하고 정부나 대구시도 포스트밀라노를 통해 염색업계를 비롯한 지역 섬유업계의 마케팅 능력 향상을 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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