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밝고 낙천적인 청년이었다.
토요일 오후에 2시간 가까이 붙잡아 놓고 이런 저런 질문을 쏟아 놓았는데도, 시종 웃음을 머금고 성실하게 답변했다.
인터뷰하는 동안 수백번도 더 웃는 특유의 쾌활함이 상대를 즐겁게 했다.
학생들과도 이렇게 수업을 하지 않을까.
♣엽기강사의 힘=정효찬(33)씨는 독특한 수업방식과 튀는 시험문제로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는 '엽기 강사'다.
지난해말 경북대 교양과목인 '미술의 이해' 시험에 '고스톱 점수?' '키스법?' 등을 출제, 모교에서 쫓겨난 후 올초 한양대에 파격적인 조건으로 스카우트됐다.
파격적이라고 해도 대구-서울간 왕복 차비를 받는 정도지만, '보따리 장사'로 불리는 시간강사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대우다.
그가 새로 맡은 수업은 자신의 전공(조각)과 관계없는 창의력 향상수업인 '유쾌한 이노베이션'. 학기초 인터넷을 통한 수강신청(2강좌)이 1분30초 만에 끝났고, 학생들의 요구에 의해 정원(각 100명)을 10명이나 늘렸을 정도였다.
"이런 수업이 학생들에게 쓸모가 있을지 회의가 들 때가 많아요. 제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생각은 안해요. 그냥 학생들과 함께 즐기고 그들의 창의력을 조금이라도 끄집어낼 수 있다는 게 좋을 뿐이죠".
♣양심점수란?=그는 며칠전에 치른 기말시험으로 또다시 화제를 모았다.
학생 스스로 시험 점수를 매기게 하고, '희망점수'와 '예상점수', '양심점수' 등 3가지 유형을 답안지에 쓰게 했다.
"25점 만점인 기말시험에 학생들이 써넣은 '양심점수'를 보니 대개 21~23점이었어요. 25점을 쓴 경우가 거의 없는 걸 보면 학생들은 아주 양심적인 게 분명해요. (웃음) 양심점수와 수업중에 '학생 평가단'이 채점한 발표점수를 더해 성적을 줄 거예요".
그의 수업시간에는 항상 에피소드로 넘쳐난다.
중간고사에는 '흥부와 놀부'라는 주제를 던져주고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쓸 것을 주문했다.
"한 물리학과 학생이 흥부와 놀부의 박에 들어갈 수 있는 금과 대변의 질량을 계산한 것이 압권이었어요. 흥부의 박에는 1.5t의 금이 들어갈 수 있고, 놀부의 박에는 성인 1회 배출량이 500g이라고 보면 3천명 분량, 1.5t의 대변이 들어간다나요. 또다른 한 학생은 놀부는 인내심과 자제력이 강하고 정력이 약한 것으로, 흥부는 인내심과 자제력이 약하고 정력이 절륜(자식이 많기 때문)한 것으로 분석했어요".
그가 중점을 두는 수업은 학생 6, 7명이 한 조로 벌이는 자유 발표. "한 조는 각지에서 생산되는 소주를 시음하고 음주측정을 했고, 어떤 조는 '음란 프로젝트'라고 명명하고 한양대 캠퍼스의 음침한 곳의 지도와 커플들의 데이트 사진을 전시했고, 중증장애인이 포함된 어떤 조는 장애인 다큐멘터리를 찍었어요".
♣다양성=그는 학생들이 다양성을 배우고 자율적으로 탐구해 양심에 따라 성적을 받는데 수업 목표를 뒀다고 했다.
그가 이런 수업을 구상한 데는 '대학시절 교양수업에서 뭘 배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요즘 그는 책을 쓰는데 바빴다고 한다.
다음달 출간을 목표로 '미술의 이해' 시험 파문을 다룬 '백설공주를 죽이시오(가제)'를 준비해왔다.
"작년말 그 사건이 신문에 오르내리자, 10여개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연락이 왔어요. 그중 가장 귀찮게 하는 출판사와 계약했는데 잘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그는 "거품 인기에 연연하는 강사로 떠돌아 다니지 않으려면 더 열심히 공부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대구사회의 '보수성'에 호되게 당한 그에게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아무래도 걸리는 게 많았는지, 우회적인 답변이 나왔다.
"서울 사람들은 대구보다 (저를) 잘 활용하는 것 같아요".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였다면 '엽기 강사'도 없었을 것이고, 시끄러운 일도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진숙·강선우 감싼 민주당 원내수석…"전혀 문제 없다"
"꾀병 아니었다…저혈압·호흡곤란" 김건희 여사, '휠체어 퇴원' 이유는
[사설] 민주당 '내란특별법' 발의, 이 대통령의 '협치'는 빈말이었나
[홍석준 칼럼] 우물안 개구리가 나라를 흔든다
전국 법학교수들 "조국 일가는 희생양"…李대통령에 광복절 특별사면 요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