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여성의 얼굴이 커다랗게 프린팅된 티셔츠, 영자신문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팬츠, 빨간색 음료수 캔을 그려놓은 스커트….
최근 패션계에 팝아트 열풍이 불고 있다.
패션과 미술이 결합된 '예술작품' 같은 의상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 대담하고 도발적이기까지한 이 패션 경향은 팝아트(pop art)적인 성격을 강하게 띤다.
팝아트는 1960년대 매스미디어와 광고 등 대중문화적 이미지를 미술의 영역에 적극 활용한 미술 조류. 손으로 낙서한 듯한 문자를 디자인한 타이포그래피(typography), 마를린 먼로처럼 유명인의 얼굴이나 각종 상품, 지폐, 신문, 만화 주인공 등의 문양을 디자인 요소에 도입한 것이 대표적인 팝아트적 패션이다.
특히 올해는 팝아트적 패션 경향 중 '음식'을 패션에 도입한 '팝푸드' 패션이 인기다.
빨간 립스틱의 선정적인 입술 모양, 앵두, 음료수 캔 등 음식과 관련된 무늬를 의상에 프린트한 것. 여성캐주얼 브랜드 '미스식스티'는 다양한 스타일의 티셔츠, 원피스, 가방, 샌들 등에 팝푸드 패션을 도입했다.
초밥이나 앵두, 김밥을 먹는 여성의 육감적이고 섹시한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미스식스티' 직원 강말숙(34·여)씨는 "다소 파격적인 무늬지만 시선을 끌 수 있어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다"고 했다.
의류브랜드 '조앤루이스'엔 앵두를 그려넣은 비키니 수영복도 있다.
'아트 그래픽'을 특징으로 내세운 여성브랜드 '쿠스토' 역시 팝아트적 경향을 지향하긴 마찬가지. '쿠스코'에서 선보인 의상들은 노란색, 연두색, 붉은색 등 원색 사용에다 영문이 어지럽게 그려진 스커트, 화장한 여성의 눈과 입술을 강조한 티셔츠 등 개성적이면서도 도발적인 무늬들이 주를 이룬다.
브랜드뿐 아니라 팝아트적 패션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지역 디자이너들도 적잖다.
디자이너 최복호씨는 지난 95년 화가 이석조씨의 작품을 바탕으로 토속적인 문양을 콜라주 형식으로 표현했었다.
그 후에도 서예가 류재학씨의 서체를 의상에 그대로 표현하거나 전통 보자기 문양, 도자기 속에 나타난 물고기 무늬 등을 지속적으로 의상에 옮겨왔다.
최씨는 "미술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며 "앞으로도 이러한 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디자이너 박동준씨도 지난 95년부터 지금까지 김영기, 이우환, 유병수 등의 국내 미술작가를 비롯, 칸딘스키, 밀레 등의 외국 작가의 작품을 의상 디자인으로 적극 활용해 오고 있다.
최근엔 화가 이명미씨의 그림을 의상 전면에 입체화시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올 가을엔 프리다 칼로의 작품으로 작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박씨는 "평면을 입체화시키는 것은 아직 매력적인 작업"이라며 "더 나아가 미술작품을 직접 제작해 이를 디자인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팝아트적 패션은 국내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다.
영국의 디자이너 폴 스미스는 미술가 앤디워홀의 작품이나 자신이 직접 촬영한 아이스크림이나 금붕어 등을 디자인의 소재로 활용한다.
모자 디자이너인 영국의 필립 트리시는 마를린 먼로의 얼굴이나 여성의 붉은 입술, 동물의 얼굴모양 등을 디자인해 모자를 만들었다.
이에 대해 박동준씨는 "60년대의 팝아트가 다시 패션계에 유행하는 것은 그 시절에 대한 향수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며 "올 가을이나 겨울의 패션에도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팝아트적 의상이 많이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팝아트적 패션 경향은 미술계 행사에서도 나타났다.
지난달 9일 한국패션센터에서 대구 아트엑스포 개막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아트 투 웨어(art to wear:입기 위한 예술)'전에 지역 미술작가 양인기, 박종규, 백영경, 이명미 등이 자신의 작품을 이용, 의상을 만들어 선보이기도 했다.
'갤러리M' 큐레이터 남인숙씨는 "패션계뿐 아니라 미술계에서도 '패션과 미술'의 접목을 시도했다"며 "새로운 작품 활로를 찾으려는 미술인들에게 다른 분야와의 만남은 좋은 자극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술과 패션 등 분야간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가 예전에도 있었지만 최근에 그 흐름이 더욱 본격화됐다"고 덧붙였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진숙·강선우 감싼 민주당 원내수석…"전혀 문제 없다"
"꾀병 아니었다…저혈압·호흡곤란" 김건희 여사, '휠체어 퇴원' 이유는
[사설] 민주당 '내란특별법' 발의, 이 대통령의 '협치'는 빈말이었나
[홍석준 칼럼] 우물안 개구리가 나라를 흔든다
전국 법학교수들 "조국 일가는 희생양"…李대통령에 광복절 특별사면 요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