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은 누구?

입력 2003-06-23 11:52:56

1995년 이승엽이 대구삼성 라이온즈에 입단, 첫 시즌을 시작하기 전 그는 작은 좌절을 겪었다.

좌완 투수로 입단한 그는 약한 팀 마운드에 활기를 불어넣으려 했으나 팔꿈치 수술의 후유증으로 마운드에 서려던 목표를 접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에겐 더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있는 스윙을 구사하던 그는 코칭 스테프의 조언에 따라 타자로 전업했고 이 선택은 그에게 영광과 명예의 길을 열어주었다.

95년 2할8푼5리의 타율, 13 홈런으로 첫 시즌을 보낸 그는 96년 타격 8위(0.302) 최다안타 6위(139개) 등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 뒤 97년 홈런 1위(32개) 타격 2위(0.329)를 차지 '홈런 타자'로서 첫 발을 내딛었고 99년 54개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우며 국내 최고 타자로 우뚝 섰다.

힘 보다는 정교한 타격 재능을 평가받았던 그는 우용득 감독과 백인천 감독의 조련을 거쳐 홈런 타자로 변신, 99년 절정에 이르렀고 이후에도 최고의 길을 걸어왔다.

97, 99, 01, 02년 시즌 최우수선수, 97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1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 수상, 97, 99, 01, 02 시즌 홈런왕, 97, 99, 02년 타점 1위 등 화려함 그 자체였다.

중앙초교때 야구를 시작한 그는 당시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 박철순을 동경하며 경상중-경북고를 거쳐 야구 엘리트의 길을 걸어왔다.

93년 청룡기고교야구대회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그는 이듬해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홈런왕과 득점왕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어릴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그에 대해 아버지 이춘광(60)씨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바로 하고 겸손할 것을 가르쳤다.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그는 튀지 않지만 성실하고 훌륭한 청년으로 자라났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등 바른 생활을 하며 홈런을 치더라도 상대 투수의 기분을 배려해 요란한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러한 면모에다 사교성도 좋아 다른 팀 선수들 중에도 친한 이들이 많으며 그에 대해 나쁜 소리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놀랍기까지 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과 자신의 야구실력에 대한 자부심도 자리잡았다.

한때 아들의 장래를 알 수 없어 프로보다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했던 아버지 이씨는 "프로에 와서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

아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올 시즌 후 이승엽은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고 있다.

22일 이승엽이 300호 홈런을 터뜨린 경기에 스카우트를 파견한 LA 다저스 등 5~6개의 메이저리그 팀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이 팀들 중 자신이 1루수로 활약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진다면 세계 최고의 야구 무대에 서서 자신의 재능을 펼쳐보이려 하고 있다.

이승엽은 99년 이후 당초 일본 무대 진출을 염두에 두었으나 2001년 당시 뉴욕 메츠가 적극적인 영입 의사를 보이자 미국 무대 진출로 목표를 높였었다.

국내 무대 마지막 시즌이 될지도 모르는 올 시즌 이승엽은 여전히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고민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이씨는 "승엽이가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떠나 미국에 진출하는 데 대해 가끔 새벽까지 잠을 설치는 등 고민도 하고 있다"며 "요즘 같이 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틈틈히 하고 있는 영어 공부에 대한 점검도 해보아야겠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승엽은 "대구삼성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

대구 시민들과 팬들이 앞으로도 많은 성원을 보내 주신다면 더 재미있고 멋진 경기를 펼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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