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들 공무원윤리강령에 냉가슴

입력 2003-06-23 09:33:22

19일 4만원, 20일 8만원, 21일 2만원. 지난 주말 동안 매출액을 보여준 영덕읍내 모 식당 주인은 기가 차다는 반응이었다.

"영덕에는 공무원들이 가장 좋은 직장인데다 수입이 안정적이어서 그들이 소비를 해 주어야 하는데…". IMF때도 이러지 않았다는 이 업소는 지난달 19일 공무원행동강령이 선포된 후부터 매출이 격감, 살길이 막막하다며 전전긍긍했다.

이웃한 고기집도 매한가지. 주인은 하루 한두팀 받기도 빠듯해 어느 정도 음식을 준비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농어촌 지역 음식점들이 공무원행동강령이 선포된 후 매출이 격감, 속앓이가 적지 않다.

모 업소대표는 "변변한 공장하나 없는 영덕에서 공무원들의 월급은 지역에서 최고 수입층에 속한다"면서 "가장 돈 잘버는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머잖아 문닫는 업소가 속출할 것이라고 했다.

부패방지위원회가 공무원의 청렴유지 등을 내세워 직무와 관련, 불가피하게 금전 또는 선물, 향응을 받을 경우라도 제시한 상한선은 3만원.

취지는 좋으나 문제는 이 규정이 시행되면서 공무원들이 아예 식당 등 업소 출입 발걸음을 끊는다는 것에 있다.

한 공무원은 "전에는 퇴근하면 직원들 또는 친구들과 어울려 소주잔이나 기울였지만 이제는 곧바로 집으로 간다"고 했다.

이유는 내돈주고 먹더라도 오해받을 수도 있는데다 괜히 도마위에 오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인 것. 점심시간도 마찬가지다.

영덕군청 경우 대부분이 구내식당을 찾아, 이용객이 종전보다 2배이상 늘어났다.

영덕군내 공무원은 군청 500여명을 포함 경찰 등 각 기관을 합하면 1천400여명 선으로 사실상 지역경제를 움직이고 있다.

특히 식당 등은 공무원 고객이 절대적이다.

이런 마당에 공무원들이 스스로 발길을 끊으니 문제가 심각해진 것. 특히 공무원 대부분이 거주하고 있는 영덕읍내 업소 경우 '공무원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 탓'에 타격이 더욱 심하다.

한여름인데도 찬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모 공무원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기도 하지만 시행 초기인 만큼 혹시 시범케이스에 걸려 곤욕을 치르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출입을 삼가고 있다"고 했고, 다른 공무원은 "민원을 처리하다 보면 이해 관계에 휘말릴 때가 적지 않은데 불만을 가진 민원인들이 엉뚱하게 식당 등 업소출입을 문제 삼고 나오지나 않을까 해서 내돈 주고 사먹어도 찝찝해 당분간 발길을 끊기로 했다"고 말했다.

영덕군청의 한 간부는 "도시에서는 한끼당 10만원하는 식사를 대접받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영덕 등 농어촌 지역은 그런 것은 꿈도 못꾼다"면서 "도시 기준을 농촌에도 똑같이 접목시킨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관계법에 공무원 행동 기준과 처벌규정이 명시되어 이를 준수토록 하면 될 것이나 또다시 행동강령을 만들어 호들갑을 떠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

영덕읍의 모 식육식당은 "농촌의 절대 소비층인 공무원들이 소주 한 잔 먹는 것조차 불안해하며 바짝 엎드리는 등 운신의 폭이 위축되다보니 영덕같은 시골은 지금 경제가 완전히 죽고 있다"며 "공무원 행동강령이 도시는 몰라도 시골에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됐다"고 비난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6일부터 24일까지 9일동안의 영덕군청에 대한 경북도의 종합감사가 실시되자 지역 모 단란주점 대표는 "지역이 더욱 썰렁해졌다"는 푸념과 함께 "이왕 감사를 하려면 지역의 이런 실태도 조사, 대책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영덕.최윤채기자 cy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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