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 신화의 본질은 뭘까?

입력 2003-06-20 15:50:56

아테나, 대지의 어머니, 하늘의 신 '누트', 전쟁의 여신 '이슈타르'….

세계 곳곳에서 전해지는 여신 신화(神話)의 본질은 뭘까?

'세계신화 속의 여성들(도원미디어 펴냄)'의 저자 김화경(56.영남대 국문과 교수)씨는 "여성 신화는 남성의 측면에서 기록된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라고 정의했다.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거나 문헌에 기록된 많은 여신들의 신화는 남성들의 취향과 입맛에 맞춰 그 모습이 변경되고 왜곡됐다는 것이다.

신화도 요즘 역사를 얘기할때 흔히 말하는 '승자의 기록'인 셈이다.

이 책은 전세계의 여신 신화를 13가지 사례로 나눠 쉽게 설명하면서, '여신'과 '남신'을 대등한 관계로 보는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는게 흥미롭다.

▣신화속에서 여성 역할은?

세계 도처에서 여신(女神)은 남신(男神)의 하위개념으로 돼있는 것은 물론이고, 여성이 인간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악역을 떠맡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온갖 재앙이 들어있는 상자를 연 그리스신화의 '판도라', 사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이브'가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까.

더욱이 성행위로 인한 피해의 책임마저 여성들에게 돌리는 것도 많다.

신성하게 살아가는 남자에게 성교를 가르치는 여성이 등장하는 '남아메리카 테네테하라족의 신화', 여자를 완전히 믿지 못하는 존재로 내모는 '중국의 달로 달아난 항아 이야기', 여자를 경박한 존재로 인식하는 '일본의 국토생성 신화' 등이 있다.

남성우월 의식에 대한 신화적 표현은 동.서양에 공통된 것이었다.

▣여성은 남성의 종속물?

여성해방운동 차원에서 여성들이 나아갈 바를 신화 속에서 찾으려는 연구가 꽤 있었다.

일본계 미국인 2세인 볼린이 대표적인 저술가다.

그는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의 저서를 통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테나 여신이 여성의 자립적인 성질을 보여주는 대표적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가부장제사회인 그리스에서 아테나 여신이 자립적인 성질을 가졌다고 이해 하기는 어렵다.

인류사회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신은 '대지모신(大地母神)'이다.

여성들의 몸에서 일어나는 월경과 출산 수유 등이 대지와 비슷하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구석기시대 이후 대지 모신 개념이 탄생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모든 것의 어머니였던 '가이아', 북아메리카 인디언 설화에서 모든 생명체의 근원을 이루는 '대지의 여인'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대지모신이 숭배되던 사회에서는 남녀의 관계가 대등한 사회였다.

그러나 가부장제가 성립되면서 대지모신이 숭앙의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그 권위는 급격하게 추락했다.

▣여신들의 활약

여신이 남신들의 보조적 역할만 한 것은 아니었다.

신화가 남성들의 기록이라고는 하지만, 세계 곳곳의 신화를 두루 살펴보면 여신들의 활약도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불을 인간세상에 전해준 일이 아닐까. 그리스 신화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천상의 불을 훔쳐왔다고 하지만, 다른 신화속에서는 이미 불이 세상밖으로 나와 있었다.

파푸아 뉴기니의 신화에서는 여신이 자신의 자궁속에서 불을 끄집어내 인간에게 전해줬고, 뉴질랜드 마오리족과 남아메리카 와라우족의 신화에서는 여신이 자신의 입에서 불을 끄집어 냈다고 전한다.

최초의 어머니가 곡물을 탄생시켰고, 수렵.어로문화를 주관하는 신도 여성이었으며, '하늘'과 '대지'의 신 또한 여성이었다.

이 정도면 여성들도 자부심을 가질만하지 않는가.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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