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핵폐기장 시설을 유치하는 지역에 3천억원에다 양성자가속기를 덤으로 얹어주고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도 그 지역으로 옮기겠다고 약속했다.
플러스 알파로 추가 지원도 제안해 놓고 있다.
그 신청 시한이 채 1달도 못 남았다.
국가적 당면현안이자 골칫거리이기도 한 문제의 핵 처리장을 유치하는 자치단체에 그만큼 반대급부를 주겠다는 정부의 소위 '끼워팔기'식 정책을 비난만 할 일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이번 정책을 놓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자치가 벌이는 고도의 심리전을 보는 듯 착잡하다.
핵처리장 유치 '뜨거운 감자'
지난 주 핵폐기장 지정과 관련, 경북 울진과 영덕에서 가지려던 지역주민 대상 설명회가 아예 전도 펼쳐보지 못한 채 무산됐다.
반대로 호남지역 일부 자치단체 중에는 이번 사태와 관련,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도지사와 시장.군수, 지역 출신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등이 나서서 적극 유치활동을 벌인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그 중에는 그럴듯하게 각색된 시나리오마저 있다.
이를 보면 정부가 핵 폐기장 시설 장소를 내정해놓고 시간을 벌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핵 폐기장은 A지역, 양성자 가속기는 B지역, 한수원본부는 C지역에 둔다는 식이 그것이다.
지금 정부에서 벌이고 있는 일련의 핵폐기장 유치 관련 설명회 등이 마치 이런 시나리오를 진행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면 지나친 유추 해석일까?
추측대로라면 정부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그 때 우리가 경북 동해안 지역에 건설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나? 당시 당신들은 그렇게 반대하지 않았나?" 하는 식으로 명분을 축적해가는 하나의 수순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러나 그 반대 추정도 가능하다.
즉 지금 정부는 동해안 지역에 핵폐기장 시설을 설치하고 싶어한다.
핵폐기물 운송경로나 지질학적.지리적 여건은 동해안이 최적이다.
그러나 지역민들이 저토록 반대하고 있으니 전라도쪽을 적당히 자극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경상도 지역 민심을 움직여 보려는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술책이라는 지적이다.
어느쪽이라도 좋다.
문제는 핵폐기장 설치에 따른 온갖 가능성과 실익여부를 두고 지역민들이 한 번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핵 폐기장 후보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정부의 이른바 '당근'인 반대급부는 엄청나게 커졌다.
원자력발전이 있는 한 국민들이 비싼 전기료를 물더라도 핵 폐기장 유치지역에 대한 반대급부도 커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자치단체로서는 그것이 고려 대상이 되는지 검토해보는 것은 필요하다.
어느 것이 진정 지역을 위하는 방법인지에 대해서는 밤새운 연구와 토론이 뒤따라야 한다.
물론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찬성이 많으면 유치한다는 전제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투표반대론' 까지도 상황이 바뀌면 고려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백지상태에서의 검토도 필요하다.
지역민들 진지하게 머리 맞대야
1981년, 당시 경북 울진.봉화.영덕군은 인구 9만명의 고만고만한 농어촌이었다.
그러던 것이 해마다 3천~5천명의 인구가 살 곳을 찾아 농어촌을 떠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이같은 농어민들의 엑소더스는 계속되고 있다.
울진은 6만6천명, 영덕은 5만1천명, 봉화는 4만2천명이 고작이다.
더 좋은 환경을 찾아 도시로 옮겨간 농어촌 지역민들을 마냥 탓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붙잡아두지 못하는 자치단체의 무안목이나 현실 개선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게으름을 탓할 일이다.
핵 폐기물 시설 유치를 그 방안 중 하나로 검토해보는 것조차 거부하는 것은 선출직 단체장의 나약함 때문인가. 광역단체는 도대체 무엇때문에 있는가. 이런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는 없는가. 경주-포항-영덕-울진을 잇는 동해안 벨트로 묶는 발전 방안으로 검토해 보기나 했는가.
반대투쟁위원회도 있고 유치위원회도 있지 않은가.
한껏 키워놓은 '당근'이 제대로 검토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상대 지역으로 넘어간다면 그것도 배아픈 일 아니겠는가. 처음부터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은 많은 고민끝에 내린 결론과는 다르지 않을까.
이경우(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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