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니가 열어준 새 세상
"여문 것은 당최 입에 넣지도 못했어요. 못씹으니 김치는 물론 맨밥도 못먹고 국수나 죽으로 때우는 일이 많았지요. 또 우물우물해야 하다보니 밥 먹을 땐 남한테 민망하고 입이 합죽하니 사람 만나기도 꺼려졌습니다".
그러던 서씨가 틀니를 해넣고서 새 세상을 맞았다.
지난달 초 틀니를 한 그는 "이제 날아갈 것 같다"고 했다.
옆 사람에게 밀어 줘야 했던 고기나 부침개를 이젠 슬며시 자기 앞으로 당겨놓게 되고, 사람 만날 때도 자신감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지난 4월 틀니를 해 넣은 지체장애 3급 김선자(62.여.대구 복현동)씨도 "이가 없을 때는 밥을 물에 말아 먹어야 했다"며 "늘 오므리고 있어야 했던 입이 펴지면서 남 보기 부끄럽지 않아서 좋다"고 흐뭇해 했다.
시각장애 5급 권오속(50.대구 남산4동)씨는 "당뇨로 이가 약해져 잇몸으로 밥을 먹어야 했다"며, "이제 틀니를 했으니 먹고 싶던 걸 다 맛보고 싶다"고 했다.
이들에게 새 세상을 열어준 것은 대구 '장애우 치과진료단'. '건치회'(건강한 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대구.경북 지부, '건강한 사회를 위한 기공사회', 대구 지산종합사회복지관 등이 참가해 2001년 3월 조직했다.
단원은 치과의 10명 등 30여명. 영세민 장애인이나 일반 치과에서 진료를 꺼리는 중증 장애인들이 진료 대상이다.
첫해부터 연간 100여명씩에게 무료로 틀니나 보철을 해 줘 왔으며 올해도 이미 40여명에 대한 시술을 끝냈다.
지산복지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업이 성과를 거두자 사회복지공동모금회도 작년 960만원, 올해 1천4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오랜 세월을 거친 깨달음
장애우 치과 진료단의 발족에는 여러 사람의 여러가지 경험이 바탕됐다.
1997년부터는 건치회 대구.경북지부 및 광주.전남 지부의 '영호남 틀니 사업'이 시도됐고, 1999년 후반부터는 대구치과의사회와 함께 한 '사랑의 틀니 사업'이 펼쳐졌다.
그러다 2001년 70세 이상 노인 틀니 치료에 정부 보조금이 주어지기 시작하면서 대상이 장애인으로 변경됐다.
사회복지 종사자들의 현장 체험도 진료단 발족의 소중한 거름이었다.
치과 치료가 그 자체뿐 아니라 정신적 치료 효과까지 있음을 알아차린 것.
"7년 전 홀몸 할머니들에게 밥과 밑반찬을 배달해 드릴 때였습니다.
봉사자들이 정성들여 지은 밥을 가져가도 한 할머니는 그걸 다시 죽으로 쑤어 먹었습니다.
이가 없어 씹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제대로 못씹어 늘 속이 쓰리다는 할머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밥이 아니라 틀니였음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지산복지관 김태우(34) 사회복지사는 틀니로 치아 건강을 되찾으면 장애인들이 자신감까지 덤으로 얻게 된다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했다.
치아 상실 콤플렉스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 발음이 분명해져 다른 사람과의 대화도 자연스러워진다는 것.
"교통사고로 집안에 누워지내던 중증 지체장애인이 있었지요. 그 분이 5년만에 첫 외출을 하게 된 곳이 바로 치과의원이었어요. 틀니를 한 후 늘 입을 가리던 습관이 없어지고 표정도 밝아졌습니다".
◇칫솔질에 불리한 장애인들
관계자들은 장애우 치과진료단을 찾는 장애인 80~90%의 치아 상태가 틀니를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했다.
단원인 박준철(35) 치과의는 "장애인들은 치아 전체에 치석이 심각하게 진행되거나 심한 잇몸질환으로 이가 빠지고 치주염으로 앞니가 튀어 나와 입이 잘 다물어지지 않는 등 갖가지 고통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혈압.당뇨약 등을 먹는 경우 치아가 더욱 약해져 그로 인한 영양실조 및 정신적 위축 등 2차적 문제까지 심각하다는 것.
이렇게 장애인이 치아질환에 약한 것은 장애때문에 치아 관리를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라고 김일훈(34) 치과의는 말했다.
손조차 움직이기 힘든 장애인들에게 양치질은 고된 노동. 심지어 가족마저 대신 이를 닦아주기 힘들고, 시설에 사는 지체 장애인의 경우 보육사가 하루 세 번 일일이 양치 시켜주는 일이 벅찰 수밖에 없다는 것.
그 결과 이를 뽑아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일반인보다 훨씬 많다고 했다.
게다가 장애인들은 몸을 제대로 못가누다보니 치료 시간마저 4, 5배나 걸려 의사들이 힘들어 한다고도 했다.
이런 점을 중시해 장애우 치과진료단은 자동 칫솔인 '전동 칫솔' 보내기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고 관계자가 전했다.
치아 건강에는 양치질이 가장 중요하고, 본인이나 주위의 장애인 양치질에는 전동 칫솔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칫솔만 갈아 끼우면 돼 전동칫솔 한 개를 여러 사람이 쓸 수도 있다고 했다.
진료단은 내년 중 개당 7, 8만원짜리 전동칫솔을 각 시설당 10~15개씩 무료로 배부할 계획이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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