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영남과 호남

입력 2003-06-18 11:55:45

조선시대 과거제는 문과·무과·잡과와 생원·진사시로 구분된다.

문치주의를 표방한 국가 정책으로 인해 문과와 그 예비시험인 생원·진사시를 중시했다.

조선 태조부터 순종까지의 27대 519년 동안 문과 급제자는 1만5천151명이다.

3년 단위의 시험(별시·증광시 제외)에서 생원·진사 초시(1천400명), 복시(200명)에 합격하고 다시 문과 초시(240명), 복시(33명), 전시(순위만 결정)를 통과해야 급제자가 된다.

조선시대 전체 생원·진사 4만7천748명 중 문과 급제자는 7천438명에 그쳐 대부분의 생원·진사는 지식계급으로 만족해야 했다.

반면 생원·진사 출신이 아닌 사람들의 과거급제(7천713명)가 절반을 넘어 인재등용의 문호가 다양했음을 보여준다.

▲문과 급제자에 대한 인구학적 통계는 혈연별, 지연별의 두 가지가 가능하다.

혈연 즉, 성씨와 지연 즉, 본관이 그것이다.

성씨별로 보면 이씨가 3천103명으로 가장 많고, 김씨 2천119명, 박씨 838명, 정(鄭)씨 737명 순이다.

100명 이상의 급제자를 낸 성씨는 27성이다.

성장지나 연고지를 의미하는 본관별로는 전주가 1천14명으로 가장 많고 안동 675명, 경주 466명이 다음이다.

본관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도 1천67명이나 된다.

대구·경북만 따지면 안동, 경주 외에 청송, 풍산, 풍천, 연일, 해평, 성주, 고령, 순흥, 대구가 100명 이상의 급제자를 냈다.

이밖에 의성, 달성, 상주, 칠곡, 기계, 선산 등도 50명 이상의 급제자를 낸 본관이다.

▲중앙인사위가 새 정부 출범 후 임명된 1~4급 중앙행정기관 공무원들의 지역분포를 발표했다.

여기에 따르면 영남 출신이 31.3%로 가장 많고, 다음이 호남 26.5%, 경인 19.4%, 충청 16.8%, 강원 4.4%다.

이 같은 분류는 일견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영남이나 호남이 같은 정서나 언어(사투리)를 나누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한 묶음을 만들 수 있는 것일까. 대구를 포함한 경북과 부산·울산을 포함한 경남을 예로 들어보자. 경북이 경남을, 또는 경남이 경북을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고 생각할 것 같지 않다.

자기 지역을 제외하면 교류 1순위 시도는 서울일 것이다.

▲영남의 고급공무원 31.3%를 경남북으로 나눠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PK정권 하에서 TK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양자는 권력을 공유하는 곳도, 정서적 교류가 많은 곳도 아니다.

사회경제적 변화가 양자 관계를 현저히 약화시켜 놓았다.

이런 차별적 개체를 영남이라는 테두리로 묶는 것은 지나간 관습일 뿐이다.

그로 인해 지역감정만 조성하게 될 우려가 없지 않다.

차라리 경북출신 몇 %, 전남출신 몇 % 등으로 세분화해 '영호남 갈등귀신'을 몰아내는 게 현책이 아닐까.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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