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의 지하철화재 소방훈련-'그들만의 훈련' 후 "안전확인" 자찬

입력 2003-06-17 11:43:04

"성공적인 소방훈련이었다고 자신합니다" "한마디로 자기들끼리 판 다 벌린거지요 뭐". 16일 오후 대구지하철 1호선 성당못역에서 치러진 '모의 지하철화재 소방훈련'은 이렇게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훈련 진행

이날 오후 1시53분 지하철 1호선 대곡역에서 출발한 제1147호 전동차의 객차별 승객은 10여명씩이었지만 유독 2호차 승객은 50여명이나 됐다.

이들은 대부분 소방훈련에 동원된 지하철공사 직원들. 참여를 유도했지만 시민 승객은 적었다.

김영인(56·대구 진천동)씨는 "송현역에서 내리기때문에 탔을 뿐 더 멀리 갈 생각이었으면 훈련이 끝난 뒤 탔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2시3분쯤 전동차가 성당못역에 진입, 출입문이 열리는 순간 2호 객차에서 연막탄이 터지면서 훈련이 시작됐다.

연기가 2호 객차 안팎에 퍼지자 승객 역할을 맡은 한 공사 직원이 노약자석 벽에 붙은 비상인터폰을 눌러 기관사와의 통화를 시도했다.

"여보세요, 여기는 2호차 전동차 안입니다.

지금 불이 났습니다". 이에 기관사는 운전사령실로 이 소식을 바로 전했고 운전사령의 지시를 받은 기관사는 전 객차에 대피 방송을 했다.

같은 시각 성당못역 역무실 역시 화재 상황을 모니터로 확인한 후 일부 역무원과 청원경찰이 승강장으로 내려 와 소화기를 들고 진화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전동차가 역에 진입한지 3분쯤 지났을 무렵 승강장 및 전동차 내 조명등이 꺼지면서 깜깜해졌다.

전동차 출입문도 닫혔다.

역무실로부터 대피 안내방송이 계속 흘러 나왔지만 요란한 경보음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전동차 안에 갇혀 있던 승객들은 코를 가리고는 수동조작으로 출입문을 열고 하나 둘 탈출했다.

대부분은 계단으로 올라갔고 일부는 송현역 방향의 터널로 대피하기도 했다.

연막탄 연기는 몇분 사이 승강장 전체를 메웠다.

소방관과 119구급대원들이 속속 화재현장에 도착, 화재진압 및 환자 이송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소방관들은 노란 불빛이 비치는 형광줄을 늘어뜨려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날 훈련에는 피난유도 제품 제조업체 9개사가 참가해 승강장부터 지하1층 대합실까지의 계단·벽면 등에 자사 제품을 가설, 성능을 선보였다.

◇엇갈린 평가

대부분 상황이 종료된 것은 전동차 진입 10여분 뒤. 훈련에 수백명이 투입되는 등 참사 당시 상황을 재현하려 애썼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20여분만에 상황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기에는 무리라는 지적도 있었다.

종합안전점검단 참관인 김경민(41) 대구YMCA 중부관장은 "5분만에 연기가 승강장에 퍼진 것을 보면 배연 설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의문이 든다"며 "이번 훈련 결과를 사령·역무실·담당팀 등 분야별로 세밀하게 평가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희생자 대책위 측 참관인 강달원씨는 "승객으로 활동한 이들이 모두 공사 직원들인데도 3분이 넘어서야 전동차를 빠져 나왔다"며 "시나리오대로 전개된 탓도 있지만 참사 때와 똑같은 대피상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훈련 과정에서도 혼선이 빚어졌다.

성당못역 화재 발생 후 맞은 편 선로를 달리던 제1142호 전동차는 한 정거장 앞인 대명역에서 비상 정차키로 돼 있었으나 실제로는 두 정거장 떨어진 안지랑역에서 정차했다.

취재기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진행이 지연되거나 그 요구로 같은 상황을 두번 되풀이하기도 했다.

일부 승객은 물통을 들고 탔지만 기름통인지 여부를 점검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하철 점검 속속 진행

지난 15일에는 대곡·성당못·중앙로·대구 등 4개역 역사·방재시설 점검 및 참사 때 불 탄 전동차에 대한 종합점검이 이뤄졌다.

중앙로역 연기 피우기 실험을 통해서는 "참사 당시 3분만에 역 대합실까지 연기가 차 올랐을 것으로 추정되고 연기 이동로로 봐 아카데미극장 쪽으로의 구조대 진입은 어려웠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지하철공사 관계자가 전했다.

16일 오후에는 희생자대책위 3명이 교대역을 찾아 역무실 LCP(Local Control Panel, 驛制御盤)의 비상정지 기능 등을 살펴봤고, 17일 오후에는 지하철공사 및 한국시설안전기술공단 관계자, 학자·전문가 등 12명이 중앙로역 정밀 안전진단 자문회의를 열었다.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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