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학습공동체 '틈세'

입력 2003-06-16 15:00:00

한국교원단체 총 연합회에 따르면 미취학 아동을 제외한 우리나라 초· 중·고생들의 사교육비는 9조 5천여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가정마다 사교육비 지출로 학부모들의 허리는 휘어지고 과외망국론이 거론되지만 사교육시장은 식을 줄 모르고 커지고 있는 게 우리 교육의 현주소.

이런 현실에서 공교육만 받으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가정형편이 어려워 사교육의 혜택을 못 누리는 계층들에겐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이란 상대적 박탈감은 갈수록 깊어간다.

지역 4년제 대학 재학생들로 구성된 대구지역 청소년 학습 문화공동체인 '틈세'는 이런 교육 현실을 보다 못해 가정형편이 어려워 사교육을 못 받고 있는 중·고생을 직접 찾아 1대1 무료 방문과외 지도를 하는 모임이다.

'틈 사이로 보이는 작은 세상이 참 아름답습니다'를 줄인 '틈세'의 온라인상 등록 회원은 170여명.

주로 경북대, 영남대, 계명대, 대구가톨릭대 등 지역 대학생들인 이들 중 대기자 70여명을 제외한 100여명이 현재 경제적 형편이 안돼 과외를 받고 싶어도 못받아 소외감을 느끼는 대구지역 중·고생 100여명에게 무료로 과외공부를 지도해 주고 있다.

친형, 친누나, 친오빠와 같은 따뜻한 마음씨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지도로 학생들은 학교공부에 자신감을 회복하고 어둡던 얼굴에 웃음과 생기를 되찾아 삶의 태도마저 긍정적으로 바뀌는 모습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낀다.

그래서 틈세 회원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인간적으로 한 단계 성숙한 변화된 자신을 발견하고 실제 사람이 된 것은 자신들이라고 한다.

이제 지역 대학생들 사이엔 보람 있는 봉사모임으로 널리 알려진 틈세가 결성된 것은 지난해 1월.

지금은 틈세의 궂은 일을 도맡아하며 왕누나로 통하는 최선희(35·여)씨가 경북대에 무용공연을 하러갔다 알게된 윤진호(27·경북대 경영학과 4년), 최용석(27·경북대 천문대기학과)씨와 함께 생활과 학업환경이 어려운 중·고생을 위해 1대1 무료과외를 해보자는 데 뜻을 모으면서 비롯됐다.

세 사람은 겨울방학 동안 대구지역 80여개 동사무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틈세의 취지와 활동목적을 설명하고 대상자 물색에 들어갔다.

구청 사회복지과와 일선 중·고등학교에도 소녀 소녀가장, 장애, 결손, 기초 수급생활자, 병중가정 등 가정형편으로 인해 사교육을 못 받는 학생들이 있으면 연락해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사생활과 관련된 것이어서 틈세의 순수한 동기를 이해하기 전 까진 동사무소에서도 선뜻 협조 해주는 것을 꺼리는 바람에 대상자 파악에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기초자료를 토대로 해당되는 가정을 직접 방문해 보호자와 학생 면담을 거쳐 과외 희망자를 선정한 다음 우선 경북대 주변부터 1대1 무료 방문과외지도를 해나가기로 했다.

3월초 대학생 자원봉사자를 모집 하기위해 인터넷에 틈세 카페 (cafe.daum.net/teumse, cafe.daum.net/teumselovehouse)를 개설하고 정식으로 활동에 들어갔다.

처음엔 동정 받는다는 생각에 썩 내키지 않는 듯 무뚝뚝 하던 중·고생들도 열심히 가르쳐 주려는 대학생 오빠, 누나, 형님들의 열의에 "그게 아니구나", "내가 실수했구나"하고 생각을 고쳐 먹고 공부에 재미를 붙여갔다.

알파벳을 모르던 중학생은 영어문장을 아직 매끄럽지 못하나 혼자 해석 할 수 있게 됐으며 틈세 대학생 과외교사들의 대가없는 지도에 보답하기 위해 공부에 집중하면서 학생들의 성적은 쑥쑥 올라갔다.

어떤 중학생은 반에서 20등 수준이던 성적이 상위권인 3등과 7등으로 껑충 뛰었으며 공부에 대한 흥미를 되찾은 여중생은 이제 시험 때가 되면 밤을 새워 공부한다고 한다.

작년 9월부터 틈세 과외를 받기 시작한 이유경(19·여고3년)양은 "모의고사 점수가 이전보다 20~30점 올라갔다"며 "비결을 물어오는 친구들에게 이제 당당히 틈세 덕분임을 드러내놓고 자랑할 정도로 선생님들이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틈세 선생님들은 중3과 고3학생들에게는 주말에 별도로 경북대 정문앞 틈세 사무실(941-1648)내 강의실에 모아 총8시간의 특강을 해준다.

또 공부외에 학생들에게 다양한 문화활동과 야외활동을 체험할 수 있게 기타와 노래도 가르쳐 주고 가요제, 체육대회를 개최해 올바른 인성을 함양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난해 여름과 겨울방학 때는 후원자의 도움으로 대상 학생들을 이끌고 강원도에서 래프팅과 스키를 즐기는 특별한 기회를 갖기도 했다.

틈세의 활동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대학생들만으로 꾸려가는 틈세의 어려운 여건을 이해하고 물질적으로 도와주는 기관이나 개인후원자들도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대구시내 몇몇 영화관에서 매월 영화티켓을 제공해주고 놀이공원에서는 틈세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야외활동을 할때는 무료입장 혜택을 주고 있다.

틈세 아이들은 새로 사귄 친구와 따뜻한 정을 나눠준 대학생 교사들을 통해 먼 곳에 있다고 생각했던 삶의 행복과 사랑을 맛보며 늘 감사하는 마음과 자신들이 받은 혜택을 돌려주겠다는 생각을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장래희망으로 틈세교사와 사회복지사가 되겠다고 응답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틈세 대학생 교사들 중에는 중·고 재학시절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했던 사람도 적지 않다.

자신도 어려움을 겪었기에 아이들의 아픈 곳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틈세 교사들은 과외지도외에 아이들의 생일을 챙겨주는 등 항상 관심을 갖고 대화하며 학생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 넣어 준다.

틈세 교사들은 유료과외도 겸업하고 있다.

유료 과외는 이들의 벌이 수단. 돈을 벌어 부족한 틈세 운영비를 충당하고 틈세의 숙원 사업인 아이들의 과외지도와 다양한 특기 적성활동을 할 수 있을만한 넓은 공간 마련을 마련할 계획이다.

정상호기자 fal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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