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업체의 노사가 이달 들어 임금교섭을 본격화했지만 역내 산업현장에서는 일을 하고도 정해진 임금조차 못받는 체임 근로자가 일년새 5배로 폭증했다.
더욱이 체임 피해 근로자 상당수는 경기 침체로 재취업도 사실상 불가능, 또다른 도시빈민으로 추락하고 있다.
◇빈털터리 인생
이모(52)씨는 3년간 다니던 성서공단의 한 금속부품 제조업체 출근을 지난 3월 결국 그만둬야 했다.
100만원 남짓한 월급을 두달 연속해 못받아 생계 유지가 불가능했기때문. "우리같은 소액 월급쟁이는 한달만 월급이 끊겨도 당장 쌀이 떨어집니다.
퇴직금조차 주지 않아 빈손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학 3년생인 그의 아들은 돈을 벌려고 이번 학기 휴학했고, 가족들은 집을 전세에서 10평짜리 월세로 줄여 긴급 대응하고 있으나 "금속 업체 대부분이 영세해 지금같은 불경기에는 재취업이 불가능해 장기적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씨는 막막해 했다.
그리고 당뇨가 심한 어머니에게 필요한 매달 약값 20만원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 당하는 가장 큰 고통이라고도 했다.
일년 전 교통사고를 당한 남편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성서공단 한 섬유업체에 근무하는 강모(37)씨도 석달치 임금을 못받고 있다고 했다.
그때문에 고등학생인 딸(16)까지 돈 벌어 오겠다며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일용직 건설근로자 최모(53)씨는 30년 동안 하루 두 갑씩 피워 왔던 담배를 지난달말 끊었다고 했다.
툭하면 급료가 밀려 일한지 네댓달 지나서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불안해져 한 푼이라도 아끼기로 했다는 것. "두달치 160만원을 다섯달 넘게 기다려 최근에야 겨우 받았다"는 최씨는 "대학생 아들에게 이번 학기 내내 차비조차 못줬으니 밥은 어디서 먹고 책은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다"고 괴로워했다.
◇체불, 얼마나 되나?
대구지방노동청에 따르면 대구.경북에서 체임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근로자는 작년 5월 말 39개 업체 1천474명에서 올해 같은 시점 244개 업체 6천893명으로 5배 가량 폭증했다.
체임액도 76억5천900여만원에서 314억6천100여만원으로 4배 가량 불었다.
10억원 이상 고액 체불 사업장도 오리온전기(264억원), ㈜갑을(30억원), 경산동산병원(20억원), 승우무역(17억원) 등 4개나 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청의 체임 집계는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은 포함되지 않은 것. 때문에 실제 실제 체임 피해 근로자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됐다.
성서공단 노동조합 박찬희 상담교육부장은 "경기가 나빠지면서 체임 피해를 호소하는 근로자 상담이 부쩍 늘었다"며 "휴폐업 하는 업체까지 늘면서 체임 근로자 숫자가 더 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노동상담소 김남희 소장은 "지난달 상담소 개소 후 접수된 70여건의 상담 중 가장 많은 것이 체임 문제"라며 "특히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임금을 못주겠다'며 근로자에게 폭력 등 협박까지 하는 경우도 있어 체임 근로자들이 이중고에 시달린다"고 전했다.
◇어떤 대책이 마련돼야 하나
노동부는 체임 피해자 구제를 위해 재직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생계비 대부사업', 도산사업장 근로자들에게는 '임금채권 보장제'를 실시하고 있다.
생계비 대부는 2개월 이상 임금이 밀린 근로자에게 1인당 최고 500만원까지 연 5.75%의 이율로 돈을 빌려주는 것으로 올 4월까지 전국에서 2천156명의 근로자가 95억원을 빌려간 것으로 집계됐다.
'임금채권 보장제'는 도산.부도.폐업 등으로 근로자들이 임금.퇴직금을 못받은 경우 밀린 임금 3개월치와 3년치 퇴직금을 국가가 지급해 주는 제도이지만 상한액이 1천20만원에 불과하고 지급 조건이 까다롭다.
대구.경북에서는 올해 30여억원이 이 방식으로 지급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정도의 대책으로는 불충분하다고 판단, 체임 피해 근로자들에 대해서도 사회복지 차원의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현덕 공인노무사는 "현재의 대책으로는 실질적 구제 효과를 거둘 수 없다"며 "복지정책으로 도입된 사회 안전망 수혜 대상에 체임 근로자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노동부는 생계비 대부 기금을 150억원에서 250억원으로 늘리고 임금채권 보장 상한선을 높이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진숙·강선우 감싼 민주당 원내수석…"전혀 문제 없다"
"꾀병 아니었다…저혈압·호흡곤란" 김건희 여사, '휠체어 퇴원' 이유는
첫 회의 연 국민의힘 혁신위, "탄핵 깊이 반성, 사죄"
[홍석준 칼럼] 우물안 개구리가 나라를 흔든다
전국 법학교수들 "조국 일가는 희생양"…李대통령에 광복절 특별사면 요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