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처음 본 개성공단

입력 2003-06-12 09:59:33

지난 2월말에 학술회의 관계로 약 일주일 동안 북녘을 다녀왔다.

그 중 하루는 개성을 가보았는데, 선죽교·공민왕릉 등 고적은 전에도 봤지만, 개성공단 건설부지는 처음 가보았다.

남쪽에서 판문점을 여러 번 가보았으나 그 바로 북쪽에 그렇게 넓은 평지가 있는 줄은 몰랐다.

안내하는 북녘 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개성공단 부지는 전체가 약 600만평인데, 그 중 200만평은 공업지역이고 200만평은 주거지역이며, 나머지 200만평은 관광단지로 된다고 했다.

안내자의 말이 개성공단 건설을 결정하면서 김정일 위원장이 "개성은 6·25 전쟁 전에는 남쪽 땅이었으니 돌려주는 셈치고 공단을 건설하자"고 했다 한다.

사실 나진·선봉이나 신의주와 달리 바로 남쪽과의 접경지대인 개성에 남북이 함께 경영하는 공단을 건설한다는 것은 종래 남북의 적대적·대결적 관점에서 보면 남북을 막론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북의 처지에서 보면 남쪽에 도로 내어주어도 좋다는 식의 '통 큰' 결단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공단이 건설되면 그 주거지역에는 남북의 공단종업원이 함께 입주하게 될 것이라 한다.

공단에 근무하는 남과 북의 종업원들이 한 이웃으로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꿈 같은 일이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개성공단 건설은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획기적인 계기가 되고도 남을 것이 틀림없다.

서쪽에서는 경의선이 연결되고 개성공단이 건설되고, 동쪽에서는 금강산 육로관광 길이 열리고 또 동해선 철도가 연결되면 이제 휴전선은 지금과 같은 긴장된 군사대결선이 아니라 하나의 평화로운 단순경계선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의 주거지역에 남북 종업원들이 함께 살게 되고 휴전선이 군사대결선에서 단순한 경계선으로 된다는 것은, 한반도에서 평화가 크게 정착되어 감을 말한다.

그것은 또 남북 사이의 신뢰가 그만큼 구축되어 간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남북 사이의 신뢰구축 정도가 높아지면 결국 쌍방이 군비감축을 논의할 수 있게 될 것이며, 감군이 실현될 수 있다면 평화정착 정도는 이제 급격히 높아지게 된다.

그리고 1국 1체제로 할 것이냐 1국 2체제로 할 것이냐 하는 통일 방안도 남북이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보면 개성공단의 건설이야말로 경제적 문제를 넘어 민족문제 자체를 해결하는 큰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평양에서 북쪽 관계자에게 노무현정부와의 첫 관계를 무엇으로 맺으려 하느냐고 물어 봤는데, 개성공단 기공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북녘 당국자들은 될 수 있으면 공단기공식을 빨리 했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기공식에 남북 두 정상이 함께 참가할 수 있다면 대단히 자연스러운 첫 만남이 될 것이라 말해주었다.

송금문제로 특검조사가 진행 중인 것이 걸리고 또 한·미 정상회담 결과와도 연관되겠지만 개성공단 기공식이 언제쯤 성사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제2차 정상회담 전이라도 남북의 두 정상이 만나는 것은 중요하며, 개성공단 기공식이 그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고려왕조의 도읍지여서 고적이 많은 개성은 6·25 전쟁 전에는 남쪽 학생들이 쉽게 가는 수학여행지였다.

지금의 개성에도 잘 꾸며진 한옥여관 마을이 있고, 거기서는 열세 개 놋접시에 갖가지 반찬을 차린 옛날 식 밥상을 사람마다 앞앞이 받을 수 있다.

공단 건설과 함께 개성이 남쪽 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 개방되면 선죽교·만월대·공민왕릉 등 유적뿐만 아니라 이제 남쪽에서는 경험하기 어렵게 된 13첩 밥상과 같은 우리의 옛 식문화에도 접하게 될 것이다.

남북 관계가 더 밀접해지고 한반도 평화정착이 앞당겨지고 남북 사이의 민간교류에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을 개성공단 건설이 순조롭게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강만길(상지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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