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보화와 인권

입력 2003-06-11 12:02:41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을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없이 대북 지원, 송금, 경제협력, 교류 등을 논하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는 야당의 주장을 간혹 접하면서 이제 인권(人權)은 우리 내부에서는 완전하지는 못하나 더 이상 크게 우려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국 단위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일명 NEIS의 적용을 앞두고 인권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교육계가 찬반 양극으로 분열되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급기야는 일부 교사들이 교육현장을 뛰쳐나가려는 극한적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사태를 바라보면서 일반 국민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NEIS가 무엇을 하자는 것이기에 우리 아이들의 인권을 유린하게 된다는 것이며 이를 시행코자 하는 관련 공무원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이 시대에 그러한 인권유린을 꾀하려고 한단 말인가?

컴퓨터의 발달, 인터넷의 보편화와 함께 급속도로 확산되어 가는 정보화라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아직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의 초, 중 고교 교육 시스템을 정보화라는 초고속 열차에 갈아 태워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자는 노력이 인권이라는 해묵은 암초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버렸다.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나 허둥대는 교육부총리를 바라보면서 정보화는 무엇이며 우리 아이들이 유린당할지도 모를 뻔한 인권의 참모습은 무엇인가를 한번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짧은 기간이기는 하나 최근 우리의 경험을 통해 한가지 분명해진 것은 처음의 우려와 다소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정보화를 통해 얻은 열매는 매우 값진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정보화가 가져다 준 최대의 선물은 민주화라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민주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일부 지배계층에 의한 정보의 독점이었다.

정보의 독점은 곧 권력의 독점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분단 상황은 이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확산되어 가는 정보화의 거대한 흐름은 민주주의의 후발주자인 우리에게도 대통령에서부터 저 벽지의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국민 모두가 수평적으로 모두에게 실시간 연결되고 모든 정보를 거의 완벽하게 공유하는 초유의 사태를 유발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보의 독점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해지게 되어지고 결과적으로 민주화를 크게 앞당기는 소중한 결실을 갖게 되었다.

이는 사실 아무도 예측 못했던 엄청난 수확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탈 권위화, 민주화가 가속되고 있으며 피라미드식 수직적 정보 전달 체계가 급속히 와해되고 수평적인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교육계라고 예외가 아니다.

전통적인 교사-학생 관계에 이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식의 의미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화라는 고속열차 안에서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보다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가 문제가 된다.

주어진 문제를 푸는 능력보다는 문제를 찾아 내거나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된다.

아직 아무도 경험하지 못해 전혀 생소하기만한 새로운 상황에서 어떠한 정보가 보다 유용하고 어떠한 정보가 오히려 우리 아이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하게 될지 사실 아무도 속단하기 어렵다.

일부에서 크게 문제가 될 만한 것으로 지목하고 있는 정보들은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오히려 전혀 문제가 되지 않거나 오히려 가장 유익한 정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프라인에서 문제아가 온라인에서는 오히려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입시 공부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적당한 운동과 수면, 그리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권리마저도 거부된 우리 아이들에게서 NEIS는 또다시 무엇을 빼앗아 간다고 교사들이 둘로 나뉘어 극한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는지 답답하기만하다.

정보화 사회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최소한의 품위와 의연성마저도 던져버리고 나면 우리 교사들이 서있을 만한 곳이 어디에 남게 될지 걱정스럽다.

북한 핵개발과 도발, 그리고 인권 유린에도 불구하고 식량공급은 중단될 수 없듯이 그 어떠한 이유에서도 교사들은 교실을 떠나서는 절대 안된다.

북한 주민이 목숨을 연명할 수 있는 권리, 학생들이 오늘 배울 수 있는 권리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성기(포항공대교수.포항가속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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