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물 장화, 홍련 13일 개봉

입력 2003-06-11 09:37:50

빛 바랜 가족사진처럼 무표정한 얼굴, 피로 얼룩진 하얀 옷, 고급스런 가구와 달리 참혹한 가족 연대기가 묻어난다.

'장화, 홍련'(김지운 감독)의 포스터는 섬뜩함 그 자체다.

지하철 역에 걸렸다가 "너무 끔찍하다"는 여론에 광고판이 뜯기기도 했다.

특히 영화에서는 붉은 피빛이 실제보다 선연하다.

코닥사가 최근 개발한 필름을 쓴 덕택이다.

올 여름 최고의 공포영화로 손꼽히는 '장화, 홍련'이 13일 개봉한다.

가족 괴담을 표방하는 '장화, 홍련'은 '조용한 가족', '반칙왕'에 이은 김지운 감독의 세 번째 장편 극영화. 조선시대 계모형 가족 비극 '장화 홍련전'을 현대적으로 복원했다.

서로 끔찍하게 아끼는 자매와 사악한 새엄마의 대립, 아버지의 무능 등이 을씨년스런 현대식 가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저수지를 끼고 있는 마을 언덕의 외딴 집, 수미(임수정)와 수연(문근영) 자매는 서울에서 요양을 마치고 아버지 무현(김갑수)과 함께 돌아온다.

새엄마 은주(염정아)는 부산을 떨며 이들을 맞지만 자매가 그녀를 대하는 태도엔 냉기가 감돈다.

이들 가족이 함께 살게 된 첫날부터 집안은 심상치 않은 기운에 휩싸이고 수미는 악몽에 시달린다.

수미는 새엄마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며 사사건건 그녀와 부딪치고, 수연은 늘 겁에 질린 채 언니를 의지한다.

신경이 예민한 새엄마는 극단적인 정서 불안 증세를 보이며 자매를 위협하고, 수미는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그녀와 맞선다.

'장화, 홍련'은 눈을 거꾸로 치뜬 혐오스런 귀신이나, 괴담이 등장하지 않고도 충분히 오싹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공포영화다.

그래서 스토리와 캐릭터에 몰입할 수록 더욱 공포감이 더해진다.

할리우드식 '깜짝 놀래키기' 영화가 아닌 공포감 그 자체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다.

공포영화의 가장 큰 몫은 주연 배우들에게 있다.

염정아가 뿜어내는 차가운 냉기가 가슴까지 뚫고 들어온다.

또 신인답지 않은 연기로 '장화,홍련'을 가득 채운 임수정의 연기가 돋보인다.

묘하게 냉랭한 분위기에 넋빠진 표정, 날카로운 눈빛으로 성숙한 연기를 보여준다.

문근영 역시 항상 겁에 질려 언니에게 매달리는 동생역을 맡아 모성애를 자극한다.

특히 '아름답고 슬픈 호러영화'를 만들고자 한 감독의 연출 의도가 잘 묻어난다.

시나리오 작업중이던 지난해 4월부터 네티즌을 대상으로 공모한 공포 체험담을 반영했고, 천을 이용한 간접 조명으로 색감과 콘트라스트가 풍부한 화면을 만들어냈다.

1천 장이 넘는 설계도와 5개월의 제작 기간, 순제작비의 30%에 해당하는 8억원을 들여 지은 '귀신들린 집' 세트 역시 인물들간의 대립에서 오는 것과는 또다른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잘 짜여진 화면과 배우들의 열연, 거듭되는 반전으로 끝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게 하는 영화다.

그러나 자극적인 괴담, 스크린에 피가 철철 흐르는 할리우드 호러에 익숙한 이들에겐 심리적인 자극의 강도가 약할지도 모르겠다.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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