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먹고 살기도 빠듯 '빨간딱지' 벼랑끝 날벼락

입력 2003-06-10 15:56:15

세금·건강보험료·국민연금료 등 공공 채무나 개인 빚에 몰려 집이나 기타 부동산을 압류당하는 서민들이 늘고 있다.

종전에는 재산이 있으면서도 고의로 세금 등을 내지 않는 얌체 고액 체납자가 많았으나 최근엔 돈 갚을 능력을 아예 상실한 사람들이 급증,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 본지 취재팀이 서민들의 생활 속 현장을 밀착 취재, 세번에 나눠 싣는다.

택시기사 정모(58·대구 송현2동)씨는 "세금 체납으로 5년 전 공장이 압류당하고도 체납액이 자꾸 증가해 아들 결혼도 못시키고 있다"며 절망스러워 했다.

소형 가구공장을 하다 IMF사태 때 직격탄을 맞아 문을 닫으면서 체납자로 전락했다는 것. 1999년부터 택시를 운전하며 2년치 밀린 세금은 겨우 갚았지만 체납액이 계속 불어나 4천여만원에 이르렀다는 정씨는 "사채 독촉도 심해 요즘은 근무를 마친 후 술로 위안 삼는다"고 했다.

이모(32·대구 신기동)씨는 형과 함께 자동차 부품 하청업체를 경영하다 2001년 부도를 당한 뒤 집이 압류되고 최근엔 아버지의 논 400평까지 압류됐다며 몸져 누웠다.

이씨는 "거래 업체가 대금을 떼먹는 바람에 덩달아 날벼락을 맞았다"며 "재기해 보려 해도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혀 대출을 받지 못하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해 2월 이혼한 뒤 남매를 데리고 사는 한모(38·여)씨는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받는 100만원 남짓한 월급의 절반을 매달 꼬박꼬박 떼이고 있다고 했다.

전 남편 명의로 돼 있는 승용차의 할부 대금을 떠안게 됐다는 것. 한씨는 "아이들 생활비 대기도 빠듯한데 빚까지 떠안아 하루하루 살기가 벅차다"고 했다.

허모(65·대구 비산2·3동)씨는 선대로부터 물려 받은 유일한 재산인 60여평 짜리 한옥을 날릴 처지에 처했다.

2000년부터 33개월간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자 보험공단이 지난 1월 압류했기 때문. 아들(37)이 있지만 몇년째 소식이 끊겨 주민등록마저 말소됐고 가족으로는 고교를 갓 졸업한 딸(20)이 있을 뿐인 허씨에겐 수입이 없다고 했다.

그때문에 건강보험료를 체납하다 작년 10월엔 공단측 재촉에 못이겨 새마을금고에서 70여만원을 대출받아 납부하기도 했으나 12월분이 또 미납되자 곧바로 집이 압류됐다고 했다.

지금까지 밀린 보험료는 170여만원. "먹고 살기 힘든데 사는 집까지 압류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절망스러워 했다.

건강보험료 압류가 심해진 것은 최근 몇년 사이의 일. 2000년 7월 건보 통합 전에는 주로 독려만 할 뿐 압류는 거의 없었지만 2001년 초 건보의 재정 파탄이 문제로 부상하면서 6개월 이상 장기 체납자에 대한 대량 압류가 시작됐다.

건보 노조는 보험공단이 징수를 강력히 독려, 징수 실적 하위 10%에 속한 지사에 대해서는 인사상의 불이익까지 주기로 해 직원들도 압류 업무에 허덕이고 있다고 전했다.

대구·경북지역 건보료 압류는 2000년 3천805건에서 2001년 2만7천141건, 2002년 4만6천267건으로 폭증했다.

그 결과 징수율은 2000년 91.78%에서 2001년 100.58%, 2002년 100.59%로 높아졌을 정도.

압류로 고통받기는 기업들도 마찬가지. 불황이 장기화된 뒤 고용보험료조차 제대로 못내 공장을 압류 당하는 사업장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대구본부에 따르면 그때문에 공장 부지와 설비를 압류당한 역내 업체는 2001년 말 641개에서 2002년 말 1천34개로 늘었고 올해는 5월 현재까지만도 벌써 1천20여개에 달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불황이 길어져 고용보험료는 물론 사원 월급조차 제대로 못주는 업체도 많다"고 전했다.

세금 체납 관련 압류도 잇따라, 올들어 4월까지 대구시세 체납으로 압류된 건수는 8만여건(체납세 227억여원)이나 되고 있다.

이는 작년 일년간 19만여건(524억원)의 40%를 넘는 것이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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