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순종 國葬 사진첩

입력 2003-06-09 11:53:27

1926년 5월 29일 중앙고보와 중동학교 학생 5명은 비밀리에 등사한 격문 5천장을 나눠 가졌다.

"2천만 동포야!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자! 만세, 만세, 조선독립만세! 단기 4259년 6월 10일 조선민족 대표 김성수(金性洙) 최남선(崔南善) 최린(崔麟)". 이렇게 준비된 격문은 디데이에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純宗.1874~1926)의 인산(因山, 왕실의 장례)을 맞아 상여가 종로3가 단성사 앞에 이르렀을 때 처음 뿌려졌다.

이어 을지로, 동대문 근처, 돈화문으로 번졌다.

3.1운동, 광주학생운동과 함께 일제하 3대 민족운동으로 꼽히는 6.10 만세운동은 그렇게 불이 붙었다.

◇10일은 6.10 만세운동 77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운동은 같은 해 4월 25일 순종의 승하와 깊은 함수관계를 가지고 있다.

당시 언론들은 속보 형식으로 날마다 순종의 장례 준비와 진행 과정을 보도했으며, 고종(高宗)의 인산이 3.1운동으로 발전했던 것을 떠올린 일제는 잇따라 신문 기사를 압수했다.

하지만 이에 굽히지 않았던 언론은 대규모 항일 민족운동으로 발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셈이다.

◇이 역사적인 날을 즈음해 순종의 인산 과정을 섬세하게 기록한 '어장의사진첩(御葬儀寫眞帖)'이 처음 공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순종의 동생 의친왕(義親王.1877~1955)의 손자인 이혜원씨가 소장해온 이 사진첩은 국장 과정 뿐 아니라 부장품과 장례에 쓰이는 도구 등 세세한 부분까지 보여주는 101장의 사진을 담고 있어 의궤(儀軌, 왕실.국가의 행사를 정리한 기록)에 해당할만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사진첩은 창덕궁 빈소의 외국 조문 사절, 돈화문 밖에서 통곡하는 학생들, 훈련원에서의 영결식, 청량리와 도농리를 지나 금곡 유릉에 안장한 뒤 다시 창덕궁에 돌아오는 순간까지를 세밀하게 담고 있다.

몇 장의 사진은 떨어져 나갔으나 1926년에 선보였던 '순종국장록'에 실린 30여장에서 보지 못한 장례의 전 과정이 치밀하게 담겨 있어 기록성이 뛰어나고, 각종 민속들을 생생하게 보여줘 장례의 세부 사항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6월은 유달리 아픔이 많은 달이다.

6.10만세운동과 6.25 한국전쟁만 떠올리더라도 그렇다.

일본이 조선을 합병해서 식민지로 만들었고, 광복 이후 열강들은 우리 한반도를 분단과 한국전쟁이라는 비참한 역사를 면치 못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이 같은 민족적 고난의 쓰라린 체험들을 '세계화된 비극'으로 끌어올렸다고는 보기 어렵다.

우리의 아픔들이 극화돼 세계가 같이 아파하는 보편성에 호소할 수 있는 '감명적인 길'을 확고하게 열어놓아야 한다.

이번 순종 국장 사진 발굴은 그런 의미에서도 값진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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