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일본국회가 자신이 일본에 도착하기 직전인 지난 6일 '유사법제'를 처리한 데 대해 "꼭 예의를 어겼다거나 뒤통수를 맞았다거나 하는 특별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을 수행, 일본을 방문중인 우리 정부당국자들도 애써 유사법제 처리가 국빈을 초청한 일본의 외교적 결례라는 국내외 언론의 지적에 대해 '노 코멘트'라며 언급을 꺼리거나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한일관계'를 강조하는데 역점을 뒀다.
노 대통령의 9일 일본국회 연설은 그런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노 대통령은 유사법제를 처리한 일본국회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는 대신 '미래와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 모두는 과거사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지만 오늘 이것을 넘어서는 말씀을 드리겠다"면서 자신의 동북아구상을 설명하고 한일양국이 협력하는 새로운 동북아시대를 열어나가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더 나아가 중국까지 포함한 동북아 3개국이 노 대통령의 희망처럼'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협력의 시대를 열어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본 언론들은 노 대통령이 유사법제와 과거사문제에 집착하지 않는 점을 부각시켰고 일본의 정치지도자들도 동북아구상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동북아구상에 대한 일본의 무관심은 '북핵문제에 대한 한.미.일간의 굳건한 공조'에 대한 입장차 만큼이나 동북아 3개국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가까운 근현대사에서 동북아 3국은'대동아공영권'이나'중화사상'등의 실현과정을 통해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반복해왔다.
참여정부가 주장하고 나선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이라는 핵심국정과제가 '동북아 경제중심'이라는 표현으로 바뀐 것도 중국과 일본의 견제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의 동북아구상은 사실 우리나라가 이제는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주도하겠다는 주장과 다름없다.
일본과 중국이 쉽사리 동조해 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현실성 없는 발상이다.
동북아시대를 열자는 노 대통령의 미래지향적 동북아구상이 현실성을 갖기 위해서는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노 대통령은 이번 일본방문에서 애써 과거문제를 회피했다.
그렇다고 일본이 이를 선의로 해석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자며 마음을 연 것도 아니다.
자칫 동북아시대 선언이 공허한 메아리나 말잔치에 그치지 않을까 염려된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진숙·강선우 감싼 민주당 원내수석…"전혀 문제 없다"
"꾀병 아니었다…저혈압·호흡곤란" 김건희 여사, '휠체어 퇴원' 이유는
[사설] 민주당 '내란특별법' 발의, 이 대통령의 '협치'는 빈말이었나
[홍석준 칼럼] 우물안 개구리가 나라를 흔든다
전국 법학교수들 "조국 일가는 희생양"…李대통령에 광복절 특별사면 요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