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여름날의 패션 한담(閑談)

입력 2003-06-09 11:53:27

날씨가 점점 무더워진다.

초여름 치고는 꽤나 따가운 햇살 탓인지 길거리.옷차림들이 한결 가볍고 얇아졌다.

미니 스커트와 블라우스의 자락이 짧아지고 허리선은 가늘어졌으며 신발도 겨울구두보다 자그마해진 것 같다.

몸매가 노출되는 초여름이면 네거리 현수막 광고도 계절을 탄다.

가는 허리, 작은 얼굴, 하얀 피부의 비법을 내건 무수한 광고들을 보노라면 중세시대 '개미허리'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코르셋과 1천년간 내려온 중국 여성의 전족이 떠오른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위해 고안됐다는 코르셋과 중국의 전족이 사실은 기네스북이 선정한 '세계사(史)의 대실수'로 꼽히는 인류패션의 실패작이었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들은 가는 허리와 작은 얼굴.손발을 희구한다.

굳이 코르셋은 아니더라도 허리를 죄기 위해 입는다는 기능성 내의나 발가락을 답답하게 죄는 맵시 위주의 작은 신발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 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저 어지러운 정치얘기 같은 건 잠시 접어두고 여름밤 한담 삼아 왜 아름다움을 위한 코르셋과 전족이 '세계사의 대실수'로 치부됐을까를 곱씹어 보자는 것이다.

유럽 여성들 사이에 코르셋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840년 무렵 이었으나 허리를 가늘게 하는 패션은 중세 르네상스 이전부터였다고 한다.

중세 프랑스의 한 여왕은 귀족의 부인들에게 10~13인치의 허리를 유지하라는 엽기적 칙령을 내린 적도 있다.

메디치 가문의 어느 공작부인은 가죽이나 고래뼈로 된 코르셋으로는 굵은 허리를 죌 수 없자 쇠로 된 코르셋을 만들어 칙령대로 13인치 허리를 유지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이처럼 중세이후 20세기가 될때까지 유럽 여성들은 오직 가는 허리 하나를 위해 코르셋에 의한 폐와 척추.간장의 손상도 마다하지 않고 잘못된 유행을 따라갔다.

1850년 코플랜드라는 학자는 '의학사전'이란 저서에서 코르셋이 자궁에도 손상을 주고 암과 간질, 우울증 같은 정신 영역에도 명백히 해를 끼친다는 진단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이듬해 열린 런던박람회에서는 더 많은 종류의 코르셋들이 전시됐고 '코르셋 아마존'이란 탄력있는 코르셋은 인기상품이 될 정도로 여성들의 개미허리 신드롬을 막지못했다.

수백년간 여성의 허리를 죄어왔던 코르셋은 지금도 일부 기능성 내의란 이름으로 바뀌어 여전히 세계 여성들의 허리를 졸라매며 복식호흡을 막거나 간장과 척추를 압박하고 있다.

작고 예쁜 발과 맵시있고 자그마한 신발도 여성들이 꿈꾸는 또다른 패션이다.

1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다는 중국여성의 전족은 남성의 신분추구욕에서 나온 풍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전족을 한 아내를 둔 남성은 경제적으로 사회적 신분이 높은 것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전족을 한 여인은 들판에 나가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아내가 일 안하고도 집안살림을 할 만큼 부유하다는 신분의 과시였고 또한 밖으로 걸어나가지 못함으로써 일종의 정조대 역할도 하면서 가문의 위신을 과시하는 징표가 됐다.

14세기 기록에 의하면 전족의 방식은 폭 5㎝, 길이 10피트의 천 붕대를 엄지 발가락만 남겨두고 네개 발가락 모두 발바닥 밑으로 가게끔 묶어 몇달동안 풀지않으면 적어도 정상적인 발 보다 10㎝정도까지 줄어들게 된다고 했다.

결국 엄지발가락만 초승달처럼 위로 휘고 나머지 발가락은 발바닥 안으로 파고 들어가거나 떨어져 나가버린다.

결혼식때도 신부가 신랑집에 도착할 때 가마에서 내리면 맨먼저 발크기부터 검사하고 집안 하객들은 길이를 잴 권리를 가졌으며 발이 크면 비웃고 신랑은 평생 창피해 했다니 그 폐해를 알 만하다.

반면 여성들은 전족풍습의 희생물이 돼 회저병이나 발가락의 후유증으로 다리를 잘라내는 여인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기네스북이 '세계사의 대실수'로 치부할 만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형적으로 굽 높은 구두, 노끈으로 죄는 구두로 발을 혹사하는 현대판 전족 여성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인류사의 '실수'도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되풀이해도 되는 걸까. 실수를 두려워 않는 여름 여성들은 참 용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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