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서 특강 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

입력 2003-06-07 15:57:52

"범인요? 저도 모르죠".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35) 감독이 5일 계명대 문예창작학과의 문학창작교실 강연을 위해 대구를 찾았다.

"처음 영화를 기획하면서 범인을 밝혀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자만에 찬 오만이었다"며 "갈수록 오리무중이었다"고 했다.

영화에서 유력한 용의자로 나오는 배우 박해일도 자신이 범인인지 아닌지를 몰라 "연기에 몰입할 수 없다"며 하소연 할 정도.

"화성 연쇄 살인사건은 너무 끔찍해 당시 시대에 대한 분노와 슬픔이 치밀어 올랐다"며 "대구 지하철방화참사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사회와 국가의 무능함이 현재까지 반복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피할 수 없는 창작의 고통'이란 주제로 열린 이날 봉 감독의 강연회는 200여 석 강의실을 꽉 채우고도 30여 명이 서서 들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실제 사건이고, 관련자도 살아 있어 더욱 힘들었다"며 "처음에는 이 만큼 관객이 들 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지난 2000년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했으나 흥행에 참패했다.

'살인의 추억'은 현재 450만명의 관객을 동원, 두 편의 영화로 극과 극을 달린 셈. 그래서 "냉온탕을 한꺼번에 체험한 것 같다"고 했다.

강의가 끝난 후 질문들이 쏟아져 '살인의 추억'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영화 내용과 관계없이 취조실에 등장하는 보일러 수리공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자 "(자신의) 의도와 결과가 빗나간 장면이었다"며 "단순한 현장 묘사였으나, 관객들이 스릴러영화의 전형을 기대하면서 엉뚱한 상상을 주게 됐다"고 말했다.

주연을 맡은 배우 송강호에 대해 "송강호는 동물적으로 몰입하는 배우"라면서 "애초에 송강호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으며, 송강호가 주연을 맡지 않았다면 영화를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추격 장면에서 "니가 나뭇가지 밟았지"나 주머니에서 손가락을 꺼내 욕하는 장면 등이 모두 송강호의 애드리브 연기. "애드리브인지 원작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리얼한 연기를 보여줬다"며 극찬했다.

원작인 연극 '날 보러 와요'에 나오던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로 바뀐 것에 대해서는 "80년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할 필요가 있었다"며 "FM 라디오를 듣는 여순경이 모차르트를 얘기하는 것도 극의 흐름과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살인'과 '추억'이란 상반적인 의미를 영화 제목에 쓴 것에 대한 찬사도 쏟아졌다.

"'안개', '여인들' 등이 후보로 나왔으나 결국 아련한 살인에 대한 추억으로 모아졌다"며 범인에게 묻고 싶은 것도 '살인이 추억거리냐'라고 했다.

감독 개런티에 대한 질문에는 "연출료 4천만원, 시나리오 4천만원이 고작이었다"며 "2년 작업치고는 너무 적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봉 감독은 초등(남도초등학교) 3학년까지 대구에서 살아 "아직도 수성못이나 앞산공원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다"며 대구가 자신에겐 특별한 곳이라며 인상을 전했다.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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