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역의 발전안은 지역 스스로 짜라'고 주문하고 있으나 대구시는 여전히 정부와 정치권만 쳐다보며 실현 가능성도 없는 개발안을 내놓아 빈축을 사고 있다.
대구시 과학기술진흥실은 최근 양성자 가속기 사업 유치가 불투명해지자 대안으로 대기업과 연구소 유치안을 만들어 정부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이 안은 실현 가능성도 따져보지 않은 초보 수준의 부실한 안으로 판단돼 보고를 요청한 정부 관계자조차 혀를 내두르고 있는 실정이다.
◇달성 산업단지 개발안=조해녕 대구시장과 이의근 경북지사, 김달웅 경북대총장, 임대윤 동구청장이 서울에까지 가서 유치 당위성을 설명하는 등 의욕을 보였던 방사성가속기 사업이 삐끗하자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달성 산업단지 개발안이다.
개발안의 핵심은 정부가 2천억원만 주면 100만평에 LG전자 공장, 30만평에 대구과학기술연구소(DIST), 20만평에 삼성 연구소를 유치해 대구를 테크노폴리스로 만드는 전환점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 안은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한나라당 김만제 의원이 박종근 의원과 함께 DIST 설립을 추진하면서 제시한 안과도 일맥상통하는 안이다.
김 의원은 그간 '외국의 사례를 봐도 DIST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고 대기업과 대기업연구소가 함께 건설돼야 산업단지의 경쟁력이 생긴다'는 견해를 거듭 밝혀왔다.
관련 전문가들도 이에 대해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문제점=달성 산업단지 개발안이 이처럼 방향이 옳아 긍정 평가 받으면서도 실현 가능성을 의심받는 것은 일의 선후가 잘못된 졸속안이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지역 출신 청와대 비서실 관계자가 양성자가속기 유치가 불투명하니 다른 안을 만들어보라고 주문하자 서둘러 달성 산업단지 개발안을 만들었다.
국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DIST 건립을 감안한 안이었다.
마침 대통령 직속의 국가균형발전위원회(위원장 성경륭)가 대기업 본사 지방 유치를 국가균형발전의 한 방안으로 제시해 시의적절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대구시가 안을 만들면서 기업의 사정은 전혀 감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LG만해도 경기도 파주에 LG-필립스 파주공장을 건설하기로 했고, 구미 제4 국가산업단지에도 공장을 짓고 있어 또다른 공장을 지을 계획도 여력도 없다는 것.
대구시는 삼성 연구소 유치를 안에 넣으면서도 삼성 관계자와 접촉한 흔적이 전혀 없다.
그래서 삼성연구소도 경제분야인지 전자분야인지 자동차분야인지 전혀 언급이 없다.
대구시 관계자는 LG공장이나 삼성연구소는 예를 들면 그렇다는 것으로 2천억원만 확보되면 그때가서 기업과 접촉해 유치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대구시가 아이디어 수준의 안을 제시해 돈을 달라고 하면 정부가 어떻게 주느냐고 되물었다.
◇충청북도 사례=지역 출신의 정부 한 관계자는 곧잘 대구시와 충청북도를 비교한다.
충북은 지역 개발 아이디어가 나오면 안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직원을 보내 관계부처 실무자와 접촉하게 한다.
직원은 서울에 상주하며 관계부처 실무자에게 로비, 안이 실현 가능한지 보완할 점이 없는지 자문한다.
이처럼 6개월 정도 실무자간에 협의하며 안을 보완하면 완벽한 안이 만들어지고 이 때부터 언론에 밝혀 공론화 과정을 거친다.
안이 정부안으로 실행되도록 행정력, 정치력 등 지역 역량을 총동원하는 것은 물론이다.
관계부처 실무자들이 이미 안을 다 파악하고 있으니 정부차원의 결정만 남아 있어 예산 반영도 손쉽다.
반면 대구시는 아이디어 차원의 안을 언론에 공개해 한바탕 난리가 난다.
지방의회에서 다루고 급기야 국회의원들이 관계부처 공무원을 불러 대구가 난리인데 왜 묵묵부답이냐며 대책을 추궁한다.
그러나 정작 관계부처에는 안도 정식 접수되지 않은 상태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너무 쉽게 포기한다=대구는 지역 발전안을 추진하면서 되면 좋고 안돼도 그만이란 식으로 안이하게 접근하고 포기도 쉽게 한다.
대구시에는 돈이 없고 정부가 도와주지 않으니 할 수 없지 않느냐는 식이다.
최근에만 해도 양성자가속기가 그랬고 한국지하철공사 설립이 그런 분위기다.
한국지하철공사법안을 마련 중인 한나라당 박승국 의원은 한 때 한국지하철공사법에 시민들이 관심을 쏟더니 벌써 시들해졌다며 이제 시작인데 힘을 모아 주지 않으니 아쉽다고 했다.
한나라당 백승홍 의원은 철저하게 준비해 안을 만들되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각계가 역할을 분담해 끈기있게 추진해야 한다며 정부나 정치권이 해결하라고 요구했다가 이뤄지지 않으면 비난하고 마는 식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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