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잃은 난꽃'(失根的蘭花). 세계에 흩어져 사는 화교들의 또다른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 대구에만 1천여명의 화교가 내국인과 똑같이 세금 내고 평생을 우리와 부대끼며 이웃으로 살면서도 국적 차별로 힘들어 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김대중 정권 이후 새 외국인등록증발급 등 몇가지 생활 편의책이 제시됐지만 불편은 여전하다.
지난 1년간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생활 속의 차별들
얼마 전 화교인 서모(18)양은 친구들과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려 했다.
업체 측은 외국인 등록증 사본과 주민등록등본을 팩스로 보내라고 요구했다.
가입하는 데 한 달이 걸린다고도 했다.
그때문에 결국 포기했다는 서양은 "심지어 인터뷰를 하러 오라는 업체도 있었다"고 절망스러워 했다.
중국식당을 하는 당소복(37)씨는 영주권까지 얻었으니 신용카드 정도는 발급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카드사는 같은 신용카드를 쓰는 신원보증인을 요구했다.
"심지어 자동차 구입 때도 할부를 거부 당하거나 보증인을 요구받는다"며 당씨는 신용카드 내기를 포기했다고 했다.
당소경(47)씨의 부인은 10년 전 심각한 골다공증으로 무릎관절과 대퇴부에 인공뼈를 넣는 대수술을 받아 무릎을 제대로 굽히지 못해 거동이 불편할 뿐 아니라 조금 멀리 걸을 때는 지팡이에 의지해야 한다.
이때문에 당씨는 2년 전 장애인 등록을 하기 위해 구청을 찾았으나 "장애인 등록은 한국 국적자에게만 가능하다"고 거절 당했다.
국민연금도 그림 속 떡이다.
타이완 국적인은 직장 단위에서는 당연 가입 대상이나 지역 단위 가입은 불가능한 것. 대부분의 화교들이 식당 등 자영업을 하는 것이 현실이니 거의가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없는 셈이다.
사회보장협정 체결국 국적자라야 외국인도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도록 돼 있기때문이다.
◇더 절실한 자녀 교육
화교학교 고3인 이충희(18)군은 친구들 대부분이 타이완의 대학으로 진학한다고 했다.
한국내 대학은 진학하기 어렵고 차별이 심하기때문이라는 것. 국내 대학들이 학생 부족에 생존마저 위협받고 세계 각국이 우수 인재를 더 많이 유치해 가려 혈안이 돼 있지만, 우리는 우리말·중국어에 모두 능숙한 사람들을 외국으로 내쫓고 있는 것이다.
관계자들은 화교학교가 외국인학교로 인가됐지만 국내 학력은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학생들이 국내 대학에 진학하려면 중고교 졸업 검정시험을 거치거나 외국인 특별 전형에 응시하는 수밖에 없다.
초중고교들도 큰 시련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일반 학교와 달리 한국정부의 지원이 없는데다 화교 숫자가 줄면서 학생도 감소해 만성적인 재정난에 빠져 있다는 것. 대구 화교학교도 70여명에 불과한 학생의 등록금만으로는 운영비 충당이 불가능, 역내 화교 유지들의 기부금과 타이완정부 보조금 등으로 근근히 살림을 꾸린다.
당가본 주임교사는 "등록금을 일반 학교보다 3배나 많이 받지만 시설 개선 투자는 엄두도 못낸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교육부가 학력 인정 방안을 제시한 것. 입법예고돼 있는 이 방안에 따르면 본국 학력을 인정받는 외국인학교가 한국어 및 한국문화 과목을 주 2시간 이상 교육하면 한국 학력도 인정해 줄 예정이다.
◇차라리 귀화라도
행정적 차별도 없을 수 없는 일. 행자부는 김대중 정부 당시 장기 거주 외국인에게도 지방선거권을 주기로 하고 관련 법률 제정을 추진했으나 흐지부지됐다.
형유미(여·35)씨는 "선거가 있을 때마다 참가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며 "TV로 지난 대선을 지켜보면서는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고 아쉬워 했다.
정부는 지난해 6월 외국인들에게 주민등록증을 대신할 외국인등록증을 주고 그 등록번호를 인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국가기관, 은행, 인터넷업체 등에 배포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사실상 아직 무용지물이다.
입력 번호의 사실 여부만 알려줄 뿐 본인 확인은 법무부의 관련 서버로 또 연결해야 가능한 탓.
한 화교는 고위 공무원의 신원 보증,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 소유, 귀화 시험 등 조건이 까다로와 대다수 화교들은 귀화를 포기하고 있다며, "나는 이미 늦었지만 아이들은 꼭 귀화시켜 이방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했다.
당소경씨는 "우리의 바람은 특별한 대우가 아니라 평생을 같이 부대끼며 사는 내국인 이웃과 똑같은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라고 했고, 한 젊은 화교는 "만약 동등하게만 대해 준다면 병역의무까지도 질 것"이라고 했다.
당가본 주임교사는 "입학 제한이 완화돼 한국인 학생의 화교학교 입학이 늘면 학교의 재정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테니, 그렇게 하는데 필요하다면 화교학교 역시 중국의 언어·지리·역사 과목만 별도 편성하되 다른 것은 모두 한국의 교육과정을 따를 수도 있다"고 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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