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사망 미망인 시련딛고 억척 신념으로 새삶 일뤄

입력 2003-06-07 10:41:24

"미망인에 대한 복지 혜택이 너무 미미해 섭섭합니다". 6.25 전쟁 2인 전사 유족이자 상이사망 미망인 박복연(64.경주시 건천읍 천포리 450)씨에게 현충일은 남달랐다.

남편의 두형제가 한국전쟁으로 전사한 박씨는 1977년 남편마저 군에서 입은 부상으로 세상을 떴다.

그렇듯 어려운 형편에도 박씨는 20여년간 미망인회 회장을 맡아오면서 회갑을 맞은 전쟁 미망인들에게는 한복을 지어 전달하고 불우청년들이 결혼할 때면 식기 한벌씩을 선물하는 등 남을 돕는데 늘 앞장서왔다.

의성군 비안면 와곡리 빈농의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중학 진학을 포기하고 친척의 중매로 스무살 되던 해에 시집온 새색시의 눈앞 현실은 단칸방 월셋집에서 당장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아야 할 형편이었다.

그러나 남의 집 과수원 김매기, 모내기, 산나물 채취, 나무장사 등으로 억척같이 일을 한 결과 9년만에 조그마한 내집을 마련할 수 있었고,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사업에 실패하고 좌절에 빠진 남편을 국민포장을 받게 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저축한 돈으로 양곡 장사를 다시 시작, 동네 사람들로부터 신망도 두터워지면서 70년초에는 부부 새마을지도자가 됐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군에서 부상을 입은 남편이 병석에 눕게되자 가세가 또 기울어져 보훈청 대부금으로 구입한 농토 1천978평을 팔아 치료비에 모두 보탰지만 남편은 끝내 세상을 떠났다.

다시 남은 것은 빈손과 가족 5명. 박씨는 이를 악물고 자녀 셋을 공부시키면서 빈터에 창고를 짓고 양곡 보관업을 시작해 얻은 수익금으로 황무지를 개간, 사과나무 신품종 900여 그루를 7년간에 걸쳐 심기도 했다.

박씨는 "마지막 남은 여생을 미망인들의 복지와 화합에 바치겠다"며 "이제 정부에서도 좀 도와달라"고 주문했다.

경주.박준현기자 jh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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