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가 잦으면 회사가 잘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듯 요즘 지역에서 '대구를 살리자'는 주제의 토론이 잦은 걸 보니 대구가 어지간히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다.
전국이, 아니 세계 일류 국가들도 숨가쁘게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마당에 대구라서 해서 '불황의 그늘'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다만 10년이 넘도록 그렇게 철저하게 그늘의 밑바닥만을 헤매온 허송세월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 경제 지표를 내세워 대구 경제의 현주소를 얘기하는 데는 이골이 났다.
오죽했으면 전국이 부동산 열풍에 법석이었던 지난 1/4분기에 대구 지역 집값은 오히려 0.2% 하락했겠는가. 투기꾼 마저도 대구를 외면하는가. '소외된 도시'라는 인상에 허망함이 앞선다.
그러나 과거지사에 얽매일 수는 없다.
미래 발전 유인(誘因)을 찾아 나서야한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대구병(病)'이라는 주제를 놓고 그 병인(病因)을 찾으려는 내부 성찰적인 움직임이 지역에서 일고있는 것은 다행이다.
대구병의 요체는 이렇다.
최근 심포지엄에서 계명대 홍원식(철학) 교수는 대구병은 한마디로 개성과 다양성, 상상력이 없고 색깔과 향기가 없는데서부터 생긴 병이라고 요약했다.
즉 다양성의 부족은 서로간의 차이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대화가 끊어져 닫힌 구조를 띠게 되고 마침내 스스로 굳어져 배타와 고립을 불러온다는 설득력있는 주장이다.
지난 4월11일 지역민으로서는 크게 자존심 상하는 신문 기사가 눈에 띄었다.
서울시가 고려대 캠퍼스의 담장을 허물기로 고려대측과 합의했다는 것이다.
대학 담장 2.2㎞를 헐어내 화단을 조성하거나 나무 1천그루를 심어 주민휴식공간을 조성하는데 예산 20억원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원래 '담장허물기'는 97년 대구시가 전국 처음으로 주도한 사업이 아닌가. 예산과 직결되는 사업이다보니 출발 당시 의지와는 달리 대구시의 '트레이드 마크'로 정착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돼 버렸다.
경대 병원이 벽을 허물기도 했지만 지금은 뒤늦게 시작한 서울시가 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결국 대구는 아이디어를 역외로 무상 수출한 셈이다.
서울시는 이를 '학교 공원화'사업으로 추진했다.
5월말 현재까지 759개 초중고 담장을 개방하거나 투시형으로 전환했다.
특히 초중고 보다는 대학의 담장허물기가 훨씬 파급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고 요즘은 대학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내친김에 서울 소재 59개 대학의 울타리를 모두 걷어치울 야멸찬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제 경북대는 담장을 허물어야한다.
복현동 언덕 23만평의 녹지를 마치 감호소처럼 둘러싸고있는 칙칙한 3.9㎞ 담장은 바로 '닫힌 구조'를 연상시키는 흉물이 아닌가. 과거 개발 독재 시대에는 대학 담장이 더러 학생을 보호하는 경계선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화의 단절'이라는 오만함으로 비쳐진다.
지역이 거듭나려면 정치권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와 대학, 언론, 시민단체 등에서 전방위적인 혁신이 이뤄져야한다.
그러나 대구의 남다른 경직 구조를 감안할 때 그나마 탄력성을 갖고있는 지역 대학이 개혁에 앞장서야 할 것 같다.
더구나 지방분권화 시대가 아닌가. 지역 대학을 거점으로 지역혁신시스템(RIS)을 만들어야한다는 여론이 폭넓게 형성되고 있다.
특히 지역전략산업으로 산학연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클러스터' 구축이 요즘의 키워드가 아닌가.
경북대가 담장을 허문다면 단순한 녹지 공간 확보 차원을 넘어선다.
지역 혁신의 상징이 될 것이다.
대구병을 치유하겠다는 의지를 지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된다.
담장허물기는 대학 혼자 할 수 없다.
고려대의 경우도 서울시.성북구청과 이미 오래전부터 공감대를 형성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경북대 담장허물기는 지역 공조측면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갖게될 것이다.
만약 의도는 충분한데 예산 문제로 미뤄놓고있다면 자원봉사 요원을 동원하면 어떨까. 곡괭이만 쥐어준다면 지역 발전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될 이 작업에 학생은 물론 인근 주민, 동문들이 대거 참여하지 않을까. 만약 작업에 참여한 사람이 스스로 슘페터적인 '창조적 파괴'를 느낀다면 대구의 경제회복은 이미 '절반의 성공'을 한 셈이나 다름없다.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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