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역사적 방일을 앞두고 일본이 보이고 있는 일련의 행태는 우리를 크게 실망시킨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방일 무용론을 걱정해야 될 정도다.
노 대통령으로서도 득보다 실이 많은 외교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아 충분하고도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해방 1세대인 한국 대통령의 첫 방일을 맞아 일본 정부는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민 일반의 낮은 관심도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과의 대화'라는 TV프로 출연까지 요청한 모양이다.
한·일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노 대통령은 특별히 입조심을 해야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상호협력관계를 깨지 않으면서 짚을 것은 짚고, 나무랄 것은 나무라야 하는 세련된 수사법이 동원돼야 한다.
자칫 말 실수로 우리 국민들의 정서나 국익에 반하는 사태가 빚어지지 않도록 십분 경계하는 자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방일에서 과거사에 대한 논의가 사라졌다는 점도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독일·프랑스와 달리 한·일은 아직도 과거사를 명확히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폐쇄적 국수주의 경향이 해방 50년이 넘도록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참회를 거부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아소다로(麻生太郞) 자민당 정조회장이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해 이뤄진 일'이라고 한 망언은 일본의 잘못된 역사관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일이다.
아무리 정치적 복선이 있다 하더라도, 상식 이하의 발언으로 정상회담에 재를 뿌릴 수 있다는 말인가. 일본은 이번 방일에서 어떻게든 과거사가 재론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역사왜곡과 망언이 계속되는 한 과거사 지적은 빠뜨릴 수 없는 일이라 여겨진다.
일본 국회가 군국화의 문을 여는 유사(有事)법제를 방일 기간 중 통과시킬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노 대통령은 9일 오전 국회 연설을 할 예정이어서 최악의 경우 대통령 연설 직후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현충일에 일왕을 만나 만찬을 하고, 대통령 연설을 전후해 군국화 법률을 통과시키는 이런 해괴한 절차가 있게 한 우리의 외교역량에 대해 할 말을 잃게된다.
결국 이번 방일은 양국관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일본의 장단에 들러리 서주는 꼴이 될 우려가 없지 않다.
북한 핵이라는 양국의 당면과제는 그것대로 해결돼야겠지만, 방일이 안 하니만 못했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차선의 대책이라도 마련하고 있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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