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베거나 목을 치는 데 쓰이는 도끼는 왕권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권력자의 생사여탈권을 의미한다.
가부장 즉 아비 부(父)자가 도끼의 상형문자라는 점도 흥미롭다.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왕이나 가부장이 백성 또는 식구들에게 절대권을 갖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고대 로마에서도 가부장은 가족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져 문화의 유사성을 엿보게 한다.
도끼는 왕을 상징하는 문양으로도 자주 이용되었다.
한국이나 중국의 왕들은 즉위식이나 종묘 또는 사직에서 제사 지낼 때 9가지 문양이 들어간 옷(九章服)을 입었다.
그 문양 중 하나가 도끼다.
▲재미있는 것은 도끼 문양에 자루가 없다는 사실이다.
자루 없는 도끼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이는 후대의 유교지식인들이 창안해낸 왕권 정당화 작업의 산물이다.
도끼의 권한은 폭력적이며, 피지배자들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속성을 띤다.
그것은 왕의 절대권을 부인하는 명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자루 없는 도끼 즉 자발적인 복종을 이끌어내는 덕치(德治)를 왕권 정당화의 근거로 제시한 것이다.
유교지식인들은 왕(王)이라는 단어에서도 덕치를 연결지었다.
왕(王)은 삼(三)과 곤(|)을 조합한 글자다.
세 개의 일(一)자는 하늘, 땅, 인간 즉 우주를 상징하며, 곤(|)은 꿰뚫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왕은 곧 천지의 덕을 본받아 우주를 관통하는 존재로 인식된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지 오늘로서 꼭 100일이 됐다.
지금까지의 '정권 성적표'는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 있을 것 같다.
"법과 원칙을 강조했지만 인치(人治)가 심해 정치의 중심이 무너졌고, 통치철학과 경륜의 부족으로 시행착오가 많았다.
대통령의 언행이 고르지 않아 국민들의 믿음을 얻지 못했다". 30~40개월쯤에 와야할 민심 이탈 현상이 석달 열흘로 조기화 된 것이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법과 원칙에 입각한 강한 정부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은 올바른 인식이라 할 만하다.
▲이쯤에서 인치를 법과 제도의 정치로 바꿀 대안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의 인사권을 제한하는 일이다.
이미 우리는 대통령 개인이나 몇몇 보좌진들이 나라 전체를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인 시대상황을 맞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으로는 효율성 있는 정치도, 국제 경쟁력도 기대할 수 없다.
대통령이 차관급 이상 200여개 요직, 더 나아가 2천~3천에 이르는 자리를 갈아치울 수 있는 절대권을 가지게 되면 정치의 인치화를 피하기 어렵다.
각 기관들이 시스템으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한 첫째 조건은 인사자율 또는 인사독립이다.
새 정권 혼선이 '자루 달린 도끼'를 너무 과용하도록 만드는 시스템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박진용 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이진숙·강선우 감싼 민주당 원내수석…"전혀 문제 없다"
"李 '이진숙, 문제있는 것 같아 딱하다' 언급"…정규재 전언
"꾀병 아니었다…저혈압·호흡곤란" 김건희 여사, '휠체어 퇴원' 이유는
전국 법학교수들 "조국 일가는 희생양"…李대통령에 광복절 특별사면 요청
첫 회의 연 국민의힘 혁신위, "탄핵 깊이 반성, 사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