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부산 과학영재학교

입력 2003-06-03 09:36:31

지난 2000년 영재교육진흥법이 제정·공포되면서 우리나라의 영재교육도 조금씩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앞서 시작된 대학들의 영재교육센터 운영에 이어 시·도별로 영재교육원이 설립되면서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공교육 차원의 영재교육이 활기를 띠게 된 것. 그러나 고교 단위의 영재교육은 과학고나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대학입시에 얽매인 이들 학교에서 제대로 된 영재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이에 설립된 게 과학영재학교. 지난해 부산과학고가 지정받아 올해 3월 첫 신입생 144명을 받은 국내 첫 과학영재학교를 지난달 30일 다녀왔다.

점심시간 늦게 대구·경북 출신 학생 10명이 모였다.

국어와 사회 이외에는 미국 고교에서 쓰는 영어 교재들로 수업하는, 신입생의 2/3가 아이큐 140을 넘는 영재들이라고 하지만 모이면 떠들썩하고, 수업 빠지기 좋아하는 모습은 보통의 학생들과 다를 바 없었다.

저희들끼리 짐승, 아저씨, 변태반장 따위의 별명을 불러대는 모습도 평범해 보였다.

무엇이 다를까. 이야기를 나누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경상도 학생들 치고는 자신의 주장을 솔직하고 논리정연하게 표현하는데 적극적이라는 차이였다.

누구에게 질문을 던져도 즉시 대답이 나왔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특성을 묻자 추승우군은 "노는 것이든 공부든 틀에 얽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개방적 학교인 점이 좋다"고 소개했다.

말은 쉬웠지만 천재 집합소의 현실은 대단했다.

수업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50분까지이고 나머지는 밤 12시까지 자유시간이지만 학생들은 시간이 부족하다고들 했다.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고 숙제를 하는 데만도 하루가 짧다는 것. 입학 석달만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밤잠을 아끼거나 새벽에 불을 밝히는 습관이 이미 들었다고 했다.

그들만의 경쟁심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았다.

김은락군은 "과목에 따라 특출나게 잘 하는 학생이 몇 명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다.

그래도 특별한 학생들이 잘 나가는 모습은 지켜보기 속상하는 일일 것이다.

과학영재학교가 운영하는 PT(Placement Test)와 AP(Advance

d Placement)를 말하는 것이다.

PT는 입학 전에 일정한 시험을 통과하면 고교 과정을 건너뛸 수 있게 한 제도이고 AP는 대학 과정을 미리 공부하는 것이다.

PT를 통과한 학생들은 KAIST 파견교수나 부산 지역 교수들의 수업을 듣고 있다.

문경근 교감은 "심화교과는 단 한명이 신청해도 전공 교수들의 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했다.

수업중인 교실을 참관했다.

학생 6명당 1명씩의 교사진을 보유한 학교인 만큼 가장 학생이 많은 수업이 18명이라고 했다.

물리 교실. 마침 추승우군이 발표를 하고 있었다.

영어 원서를 척 하니 들고 앞에 서서 원문을 읽어가며 설명하고 칠판에 풀어가는 모습에 혀가 내둘러졌다.

만 열살에 정보처리기사 2급 자격증을 따내 자격증 부문 최연소로 한국기네스에 오르기도 한 추군은 이미 정보과학 분야 PT를 통과한 실력파. 그의 문제풀이에 집중하면서 노트북 컴퓨터와 전자계산기를 두드려대는 학생들의 모습도 영재들 다웠다.

옆 교실은 영어시간. 원어민 강사와 나누는 대화의 속도는 이미 외국어학원 중급반 수준을 넘고 있었다.

강사가 질문을 던지자 순식간에 답변이 쏟아지고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과정으로 금세 넘어가는 수업은 고도의 집중력 없이는 듣기 힘들어 보였다.

과학영재학교의 교육과정은 145학점 이상을 취득하면 졸업하는 무학년제다.

5학기 정도면 졸업하고 외국 유학에 나설 수 있게 맞춰졌다.

수업은 토론식. 학생 6명당 1명꼴의 교사라고 하지만 30% 이상이 박사다.

진학과 생활지도를 위해 6명당 교사 1명의 어드바이스 제도도 운영되고 있다.

수능시험에 부담이 적은 것도 영재들에겐 힘이 된다.

KAIST, 포항공대와 협약을 이미 체결했기 때문에 졸업하면 특별전형을 통해 무시험으로 입학할 수 있다.

서울대와도 협의중이다.

교내 시설은 얼핏 둘러보기에도 대학 수준이었다.

건물에 80억원이 투자됐고 3억원짜리 천체망원경에 전자현미경, 분광분석기 등 첨단 기자재들도 적지 않았다.

도서실 서가에는 1억원어치의 원서가 꽂혀 있었다.

내년에도 1억원어치가 더해진다.

영재교육이라고 해도 공교육인 만큼 지식 뿐만 아니라 체육, 예술 등에도 소홀하지 않다.

클럽활동은 일반 고교보다 훨씬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주말에는 장애인 시설 등을 방문해 1박2일 동안 봉사활동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유혜(46·여) 학부모회 부회장은 "과외비가 들지 않고 원하는 공부를 맘껏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로서는 고마운 일"이라며 "학부모들이 식자재 검수나 학교 홍보 등을 돕고 있지만 나설 일도 별로 없을 만큼 학교 운영이 잘 짜여 있다"고 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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